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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잠을 푹 자도 개운하지 않고, 머리는 멍하고, 속은 더부룩하고, 몸은 이유 없이 무겁다고 했다. 병원 검사에서는 대체로 괜찮다고 한다. 피검사도 큰 이상은 없고, 갑상선도 괜찮고, 간 수치도 그럭저럭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슬그머니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혹시 중금속 검사 해보셨어요?”
피곤해도 중금속. 집중이 안 돼도 중금속. 아이가 산만해도 중금속. 피부가 뒤집혀도 중금속. 이유를 모르겠으면 일단 몸속 어딘가에 납, 수은, 카드뮴, 비소 같은 것들이 음침하게 쌓여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그러면 이상하게 이야기가 정리된다. 삶은 복잡하지만 원소기호는 단순하니까.
물론 중금속 노출은 실제로 있다. 납, 수은, 비소 같은 물질은 특정 환경에서 몸에 해를 줄 수 있다. 산업 현장, 오염된 식품, 특정 약재, 사고성 노출처럼 맥락이 분명할 때 검사는 필요하다. 제대로 된 검사는 질문이 있을 때 쓰는 도구다. 어디서, 얼마나, 어떤 경로로 노출되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검사는 원래 의심을 좁히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요즘 팔리는 중금속 검사는 자주 반대로 움직인다. 의심을 좁히지 않고 넓힌다. 설명을 찾는 게 아니라 불안을 증식시킨다. 피곤한 사람에게 삶의 구조를 묻는 대신 머리카락을 뽑는다. 잠, 노동, 스트레스, 술, 식사, 운동, 우울, 불안, 돌봄 노동, 과로 같은 재미없는 단어들은 뒤로 밀린다. 대신 훨씬 매력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독소.
사람은 설명되지 않는 불편 앞에서 약해진다. “정상입니다”라는 말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모욕처럼 들린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정상이라니. 그 틈으로 누군가 들어온다. “일반 검사로는 안 나옵니다.” 이 문장은 기존 의학을 의심하게 만들고, 동시에 새로운 결제를 준비시킨다.
검사를 한다. 수치가 나온다. 그래프가 있고, 색깔이 있고, 기준선이 있고, 빨간 표시가 있다. 사람은 빨간 표시 앞에서 갑자기 오염된 존재가 된다. 어제까지 그냥 지친 사람이었는데, 오늘부터는 몸속에 중금속을 품은 위험한 생명체가 된다. 숫자는 차갑고 객관적인 척하지만, 그 숫자를 해석하는 사람은 대개 아주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해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부터 장사는 완성된다. 검사만 팔면 소박하다. 진짜 시장은 그다음이다. 해독 수액, 킬레이션, 보충제, 식단 프로그램, 장기 관리 패키지. 독이 있다고 말했으니 빼내는 상품도 있어야 한다. 불안을 넣고, 해독을 판다. 몸은 실험실이 아니라 구독 서비스가 된다.
특히 킬레이션 뒤 소변을 받아 중금속 수치를 재는 방식은 이 장사의 문법을 잘 보여준다. 약을 써서 금속 배출을 일부러 늘려놓고, 그 소변의 수치를 보고 “많이 나왔네요”라고 한다. 당연하다. 나오게 만들었으니까 나오는 것이다. 체중계에 올라가기 전 주머니에 쇳덩이를 넣어놓고 비만 판정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종이 위 숫자는 늘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숫자 앞에서 사람은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모발 검사도 그럴듯하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면 몸속 역사가 펼쳐질 것 같다. 간편하고, 덜 아프고, 어쩐지 첨단적이다. 하지만 애매한 증상의 원인을 설명하겠다고 내미는 모발 검사는 그만큼 조심해서 봐야 한다. 머리카락에는 샴푸, 염색, 먼지, 수돗물, 외부 오염이 묻는다. 검사실마다 기준과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자료를 붙들고 피로, 불안, 피부, 집중력, 면역을 한꺼번에 설명하기 시작하면 의학은 어느새 점집 옆방에 앉아 있게 된다. 차이라면 점괘 대신 PDF 파일을 준다는 정도다.
이런 검사가 유독 잘 팔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피곤한 건 과로 때문이 아닙니다. 잠을 못 자서가 아닙니다. 몸을 너무 몰아붙여서도 아닙니다. 수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달콤한가. 삶을 바꾸는 일은 귀찮고 어렵다. 그러나 독소를 빼는 일은 돈을 내면 시작할 수 있다. 건강 산업은 이 차이를 잘 안다. 생활은 바꾸기 어렵고, 패키지는 결제하기 쉽다.
더 교묘한 점은 이것이 과학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소 이름이 나오고, 수치가 나오고, 검사표가 나온다. 사람은 카드뮴이라는 단어 앞에서 괜히 숙연해진다. 비소라는 말은 무섭고, 수은이라는 말은 오래된 공포를 건드린다. 주기율표는 장사꾼에게 꽤 좋은 소품이다. 흰 가운과 함께 놓이면 거의 무적이다.
물론 모든 검사를 비웃자는 말은 아니다. 실제 노출이 의심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검사는 해야 한다. 직업력, 환경, 식이, 사고 노출, 증상과 진찰이 함께 놓여야 한다. 검사는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맥락 없이 던져진 검사는 답이 아니라 미끼다.
애매한 증상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병명이 없으면 더 그렇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피로도 이름을 갖고 싶고, 멍함도 이름을 갖고 싶고, 이유 없는 불편도 원인을 갖고 싶다.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과, 그 마음을 상대로 장사하는 것을 봐주는 일은 전혀 다르다.
“애매할 땐 중금속 어때?”
이 문장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꽤 정확한 판매 전략이다. 애매함은 시장이 된다. 불확실성은 상품이 된다. 검사는 질문을 해결하는 척하면서 질문을 더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마다 가격표가 붙는다.
몸은 원래 자주 애매하다. 피곤하고, 무겁고, 찌뿌둥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날들이 있다. 그 애매함을 전부 독소로 번역하는 순간, 인간은 삶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염도를 가진 물건이 된다.
검사지가 조용히 말한다.
당신 안에 뭔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이제 몸을 돌보는 대신, 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1. American College of Medical Toxicology. ACMT recommends against use of post-chelator challenge urinary metal testing. Journal of Medical Toxicology. 2017;13:352-354.
2. Seidel S, Kreutzer R, Smith D, McNeel S, Gilliss D. Assessment of commercial laboratories performing hair mineral analysis. JAMA. 2001;285(1):6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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