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오래 산다.
더 많이 검사하고, 더 많은 영양제를 먹고, 더 자주 운동한다.
혈당을 재고, 장내미생물을 걱정하고, 유전자검사 결과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밥 한 숟갈에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 하나를 먹으면서도 혈당을 걱정한다.
늙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관리 실패처럼 여겨진다.
건강은 원래 삶을 위한 조건이었다.
아프지 않으면 일하고, 사랑하고, 먹고, 걷고, 웃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건강은 조건이 아니라 목적이 되었다.
아니, 목적을 넘어 신앙이 되었다.
면역력은 부적이 되었고, 디톡스는 세례가 되었고, 건강검진은 고해성사가 되었다.
영양제 서랍은 작은 약국이 되었고, 운동 기록은 신앙 간증이 되었다.
사람들은 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몸에게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물론 건강은 중요하다.
의사인 내가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혈압, 혈당, 체중, 수면, 운동, 식사. 다 중요하다.
문제는 중요하다는 말과 숭배해야 한다는 말 사이에 꽤 큰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건강을 돌보는 사람은 삶을 위해 몸을 챙긴다.
건강을 숭배하는 사람은 몸을 위해 삶을 바친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시장은 이 차이를 잘 알고 있다.
시장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물건을 팔기 어렵지만, 불안한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팔 수 있다.
당신의 면역력이 낮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장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혈당이 출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노화가 남들보다 빠를지도 모른다.
이 “지도 모른다”가 현대 건강산업의 가장 중요한 연료다.
의학은 대개 확률을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확률을 싫어한다.
확실한 답을 원한다.
이걸 먹으면 낫는가.
이 검사를 하면 안심해도 되는가.
이 수치를 낮추면 오래 사는가.
이 주사를 맞으면 젊어지는가.
대답은 대체로 시시하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다.
위험군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기적은 아니다.
이런 말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은 더 단순한 말을 판다.
먹어라.
빼라.
씻어내라.
높여라.
낮춰라.
젊어져라.
이 블로그는 그런 말들을 조금 삐딱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건강을 비웃자는 것이 아니다.
몸을 함부로 대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몸은 꽤 정직하고, 꽤 불쌍하고, 꽤 오래 참아주는 존재다.
그러니 돌봐야 한다.
다만 몸을 돌보는 일과 몸의 종이 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건강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건강은 살아 있는 동안 조금 덜 고장 나기 위한 조건일 뿐이다.
오래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살아야 한다.
이 당연한 말을 잊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건강이라는 이름의 이상한 신앙을 하나씩 해부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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