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유산균을 기다리며

한때 ‘휴먼 게놈 프로젝트’라는 말이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휴먼 지놈’이라고 읽는 편이 원음에 가깝겠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게놈이라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욕 비슷한 말인가 싶었는데, 정부 기관과 대학 교수들이 태연하게 쓰는 것을 보고 욕은 아닌가 보다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거대한 기대가 실려 있었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면 질병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고, 누가 어떤 병에 걸릴지 예측하며, 사람마다 맞는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1990년 시작돼 2003년 인간 유전체의 기준 서열을 완성했다. 프로젝트 자체는 성공했다. 지도는 만들어졌다. 다만 사람들이 지도에서 기대했던 보물상자가 생각만큼 빨리 나오지 않았다.

일부 유전질환에서는 원인 유전자를 찾는 일이 큰 성과를 냈다. 그러나 당뇨병, 비만, 심혈관질환, 알레르기, 우울증처럼 흔하고 복잡한 질환은 사정이 달랐다. 관련 유전자는 계속 발견됐지만, 각각의 유전자가 더하는 위험은 대개 작았다. 발견된 유전자들을 모두 모아도 가족력이나 질병 발생의 상당 부분이 설명되지 않았다. 

학계는 여기에 ‘사라진 유전력’, 즉 ‘미싱 헤리터빌리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른다는 말을 영어로 하면 연구 과제가 된다.

사람은 유전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무엇을 먹고, 어디에 살고, 어떤 약을 복용하며, 어떤 감염과 스트레스를 겪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유전자의 작동 방식도 환경과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설계도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펼쳐보니 설계도 옆에 수많은 각주와 수정사항이 붙어 있었던 셈이다.

그 무렵 과학자들의 시선이 인간의 몸에 함께 사는 미생물로 향했다.

인간의 유전자만으로 건강과 질병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면, 우리 몸속 미생물의 유전자까지 함께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다. 2007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도 이 사업을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개념적 확장’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간 세포만으로 보지 말고, 몸 안팎에서 함께 사는 세균과 바이러스, 곰팡이의 유전자까지 포함해 보자는 시도였다.

인간의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수가 예상보다 적다는 사실도 이런 관심을 키웠다. 인간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는 약 2만 개 안팎으로 추정됐다. 예상보다 단출했다. 반면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들이 가진 유전자를 모두 합치면 훨씬 많은 기능적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유전자만 읽어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힘을 얻을 만했다.

약 10여 년 전 유산균에 관한 학술지 원고를 쓰면서 이 흐름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관련 논문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었다. 장내 미생물은 소화만이 아니라 면역, 염증, 대사, 비만, 당뇨병, 뇌 기능과도 연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게놈프로젝트 다음의 거대한 연구 영역이 열린 분위기였다.

논문의 문장은 대체로 조심스러웠다.

관련이 관찰되었다.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기전은 더 연구해야 한다.
대규모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과학은 대개 이런 문장으로 움직인다. 문제는 시장이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을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과학의 걸음은 느렸고, 시장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요즘 아침방송을 켜면 유산균은 이미 장을 떠나 전신에 배치돼 있다. 질 유산균, 다이어트 유산균, 갱년기 유산균, 혈당 케어 유산균, 구강 유산균, 피부 면역 유산균. 인체의 부위와 걱정마다 담당 유산균이 따로 있다. 

이 기세라면 집중력 유산균, 승진 유산균, 원만한 부부관계 유산균을 거쳐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산균도 나올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는 완전히 같은 말이 아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적절한 양을 섭취했을 때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미생물을 뜻하고, 유산균은 그 가운데 일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방송과 시장에서는 두 단어가 거의 같은 말처럼 사용된다. 소비자에게는 구분보다 효능이 먼저 전달된다.

문제는 연구의 가능성이 상품의 효능으로 번역되는 속도다.

장내 미생물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디스바이오시스’가 있다.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비교적 단순하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구성이나 기능이 평소와 달라진 상태다. 흔히는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흐트러졌다’고 표현한다.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이 줄거나, 문제와 관련된 미생물이 늘어난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미생물의 종류가 단순해지거나,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과 기능이 달라진 경우도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서 ‘균형’이라는 말이 문제다. 

어떤 미생물 구성이 정상인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기준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건강한 사람끼리도 장내 미생물은 상당히 다르다. 나이, 식사, 지역, 약물, 생활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디스바이오시스는 여러 현상을 묶어 부르는 연구 용어에 가깝지, 당뇨병처럼 하나의 수치로 판정하는 확정 진단명이 아니다. 

정상이라는 지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시장에는 이미 ‘장내 균형 회복’ 제품이 줄지어 서 있다.

물론 프로바이오틱스가 아무 쓸모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특정 균주가 특정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있다. 일부 장질환과 항생제 관련 설사 등에서는 검토할 만한 근거도 있다. 

그러나 ‘유산균이 효과가 있다’는 문장은 너무 크다. 

어느 균주인지, 얼마나 먹었는지, 누구에게 사용했는지, 무엇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함께 말해야 한다. 한 균주에서 확인된 결과를 다른 균주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같은 김 씨라고 같은 사람이 아니듯, 같은 락토바실러스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효과까지 같지는 않다.

과민성 장증후군만 보더라도 연구 결과는 일정하지 않다. 일부 연구에서는 증상이 줄었지만, 사용된 균주와 조합이 제각각이고 연구의 질도 고르지 않다. 미국소화기학회는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에게 프로바이오틱스를 일반적으로 권할 만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염증성 장질환도 하나로 묶어 말하기 어렵다.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수술 후 파우치염은 서로 다른 질환이고, 프로바이오틱스의 효과도 같지 않다. 특정 질환의 특정 상황에서 일부 제제를 검토할 수는 있지만, 염증성 장질환 전체에 통하는 만능 보조제로 보기는 어렵다.

질 유산균도 비슷하다.

질 내 미생물 환경이 여성 건강과 관련 있다는 사실과, 시중의 유산균을 먹으면 질염이 치료되거나 예방된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세균성 질염에서 프로바이오틱스를 표준치료의 대체제나 보조제로 뒷받침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정리한다.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말과 지금 당장 효능을 확신할 수 있다는 말 사이에는 제법 긴 거리가 있다.

혈당, 체중, 피부, 구강, 갱년기 분야에서도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작은 변화가 관찰된 연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연구도 있다. 일부 결과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더라도, 그 차이가 실제 생활에서 체감할 만큼 큰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포장지에는 이런 사정이 잘 적히지 않는다.

논문 속 ‘도움을 줄 가능성’은 상품명에서 ‘혈당 케어’가 된다. ‘관련성이 관찰됐다’는 문장은 방송 자막에서 ‘장부터 면역까지’로 바뀐다. 임상시험 결과가 일관되지 않다는 연구자의 설명보다 제품 이름이 훨씬 자신만만하다.

상품화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연구 결과가 실제 제품과 치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과학은 논문 보관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다만 상품은 연구보다 자주 앞서 달린다. 때로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연구가 따라오기를 기다린다.

기능별 유산균은 정밀의학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정밀하게 분류된 것은 균주와 환자라기보다 소비자의 걱정일 때가 많다. 

살이 걱정되는 사람에게는 다이어트 유산균을, 혈당이 걱정되는 사람에게는 혈당 유산균을, 늙어가는 일이 걱정되는 사람에게는 갱년기 유산균을 판다. 사람의 미생물 생태계보다 상품 진열대가 먼저 개인 맞춤형이 됐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의 설계도를 읽으면 질병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낳았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인간의 유전자만으로 부족하다며 미생물의 유전자까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가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과학은 아직 지도를 그리고 있다.

하늘을 나는 유산균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탑승권부터 결제하고 있다.


1. Human Microbiome Project Consortium. Structure, function and diversity of the healthy human microbiome. Nature. 2012;486(7402):207-214.

2. Hill C, Guarner F, Reid G, Gibson GR, Merenstein DJ, Pot B, et al. Expert consensus document: The International Scientific Association for Probiotics and Prebiotics consensus statement on the scope and appropriate use of the term probiotic. Nat Rev Gastroenterol Hepatol. 2014;11(8):506-514.

3. Suez J, Zmora N, Segal E, Elinav E. The pros, cons, and many unknowns of probiotics. Nat Med. 2019;25(5):716-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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