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염증은 참 바쁘다.
어깨가 아파도 염증이고, 얼굴이 푸석해도 염증이고, 피곤해도 염증이고, 배가 더부룩해도 염증이다. 잠을 못 자도 염증, 단 게 당겨도 염증,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염증이다. 이쯤 되면 염증은 인생 전반을 설명하는 종합 해설자에 가깝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몸에 걸면 염증.
물론 염증은 실제로 있다. 그리고 중요하다. 너무 중요해서 문제가 된다. 염증은 몸이 손상이나 감염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상처가 났을 때 붓고, 빨개지고, 열이 나고, 아픈 것은 몸이 멍청해서 벌이는 소동이 아니다. 나름의 방어 작전이다. 외부 침입자를 막고, 손상된 조직을 정리하고, 회복을 시작하기 위해 몸이 켜는 경보 시스템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염증은 방어 수단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염증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염증이라는 악당이 숨어 있고, 우리가 아침마다 녹즙과 캡슐을 들고 그놈과 결투라도 벌여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염증이라는 말은 불안을 팔기에 아주 훌륭한 상품명이다. 적당히 의학적이고, 적당히 무섭고, 적당히 모호하다.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몸속 염증”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정확히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왜 생긴 염증인지는 묻지 않는다. 이미 피곤하고, 이미 찌뿌둥하고, 이미 자기 몸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 틈으로 영양제가 들어온다.
항염.
염증 완화.
만성 염증 관리.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먼저 몸을 의심하게 만든다. 당신이 피곤한 건 단순히 잠을 못 자서가 아니다. 당신이 무기력한 건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당신이 나이 드는 건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다. 몸속에 보이지 않는 염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불을 끌 수 있는 캡슐이 있다. 오늘만 할인한다.
참 친절한 세계다. 불안을 만들어주고, 불안의 이름을 붙여주고, 그 불안을 삼킬 수 있는 알약까지 배송해준다.
사실 염증은 아무 때나 두들겨 패도 되는 샌드백이 아니다. 염증이 없다면 인간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감염에 취약해지고,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않고, 몸은 손상을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능력을 잃는다. 염증 반응은 몸의 전투이자 청소이고, 때로는 수리 공사다.
물론 과한 염증, 오래 지속되는 염증, 엉뚱한 곳을 공격하는 면역 반응은 문제가 된다. 어떤 질병들은 실제로 염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부위가 있고, 원인이 있고, 경과가 있고, 진단이 있고, 치료가 있다.
그런데 시장은 이런 맥락을 싫어한다. 맥락은 길고, 복잡하고, 돈이 천천히 된다. 반면 “염증이 문제입니다”라는 말은 빠르다. 짧다. 잘 팔린다.
그래서 염증은 점점 더 납작해진다. 몸의 복잡한 방어 체계에서, 광고 문구 속 악당으로. 의학적 현상에서, 생활습관 유튜브의 단골 빌런으로. 인간이 살아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반응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몸속 쓰레기로.
이쯤 되면 사람들은 자기 몸과 계속 전쟁을 하게 된다.
피곤하면 몸을 돌보기보다 의심한다. 붓기가 있으면 어제 짠 음식을 먹은 기억보다 염증부터 떠올린다. 나이 들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도 몸속의 적이 활동한 증거가 된다. 몸은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 아니라 감시해야 할 내부 고발자가 된다.
건강 산업은 이 감시 상태를 좋아한다. 사람이 자기 몸을 불신할수록 더 많은 것을 산다. 검사도 사고, 영양제도 사고, 디톡스도 사고, 항염 식단도 사고, 몸속 독소를 빼준다는 프로그램도 산다. 몸은 점점 더 관리 대상이 되고, 관리 대상은 곧 결제 대상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염증이라는 단어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진짜 염증이 생길 것 같다. 적어도 정신적 발적과 부종 정도는 느껴진다. 열감도 있다. 통증도 조금 있다.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의학 용어를 빌려 불안을 부풀리고, 그 불안 위에 캡슐을 쌓아 올리는 장면을 너무 자주 본 탓이다.
우리는 몸을 너무 자주 적으로 만든다.
혈당을 적으로 만들고, 지방을 적으로 만들고, 탄수화물을 적으로 만들고, 콜레스테롤을 적으로 만든다. 이제는 염증이다. 다음 악당은 무엇일까. 활성산소는 이미 한 차례 크게 활약했고, 호르몬도 주연급으로 자주 등장한다. 장내미생물은 선역과 악역을 오가며 아직 흥행 중이다.
건강 담론은 늘 악당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쉬워진다. 그래야 제품이 필요해진다. 그래야 사람들은 자신의 피로와 불안과 노화를 하나의 적에게 떠넘길 수 있다. 복잡한 생활, 수면 부족, 노동, 스트레스, 나이, 유전, 우연, 사회적 조건 같은 것들은 팔기가 어렵다. 하지만 염증은 팔 수 있다. 병에 담고, 라벨을 붙이고, 후기 몇 개를 얹으면 된다.
염증은 사라져야 할 적이 아니라 몸이 아직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문제는 그 신호를 읽는 방식이다. 모든 신호를 공포로 번역하는 사람들, 모든 공포를 제품으로 번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기 몸을 점점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
몸속에 불이 있다는 말은 강렬하다. 누구나 불을 끄고 싶어진다. 하지만 때로 몸이 켠 불은 구조 신호다. 난로일 수도 있고, 경보일 수도 있고, 수리 현장의 작업등일 수도 있다. 아무 불이나 무조건 꺼버리는 것이 지혜는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오늘도 말한다.
당신 몸속 염증을 잡아야 한다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다행히 자기에게 좋은 제품이 있다고.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붓는다.
이 정도면 항염제가 필요한 쪽은 내 관절이 아니라 내 인내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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