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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버리려고 꺼낸 물건 앞에서 오히려 더 오래 머물게 된다.
몇 년째 입지 않은 셔츠, 언젠가는 읽을 것 같아 꽂아둔 책, 어디에 쓰는지조차 희미해진 작은 기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내 돈으로 샀고, 내 집에 있으니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미니크 로로는 《심플하게 산다》에서 이런 소유의 역설을 말한다. 우리가 물건을 소유하는 것 같지만, 실은 물건이 우리를 소유한다. 물건은 가만히 있는 듯하지만 공간을 요구하고, 관리와 기억을 요구하며, 때로는 죄책감까지 청구한다. 소유주는 나인데 월세도 내가 내고 눈치도 내가 본다.
나는 이 말을 물건을 사고 버릴 때의 이정표로 삼는다.
물리적으로 내 공간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두 내 물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주 쓰느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이 내 생활 안에서 가치와 기억을 얻고, 나라는 사람의 일부와 연결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소유는 결제보다 느리다.
그 생각을 조금 더 유쾌하게 보여준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였다.
나는 소설가 무라카미만큼이나 생활인 무라카미를 흠모한다.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달리고, 음악을 듣는 사람. 그의 생활에는 절제가 있지만 이상하게도 금욕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스스로 정한 질서 안에서 꽤 자유롭게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무라카미 T》에 등장하는 것은 거창한 수집품이 아니다. 여행지와 중고 상점에서 어쩌다 손에 들어온 티셔츠들이다. 위스키, 레코드, 마라톤, 서핑 같은 그의 취향이 천 조각 위에 느슨하게 흩어져 있다. 일부는 별것 아닌 농담을 품고 있고, 일부는 어느 시절의 장소와 기억을 데리고 있다. 수집하려고 작정한 적은 없는데 어느새 상자가 넘치도록 쌓였다는 티셔츠들에 짧은 이야기가 붙는다.
그저 티셔츠일 뿐인데, 그의 티셔츠는 확실히 그의 것이다.
취향의 표출이고, 지나간 시간의 영수증이며, 일상을 기록한 조금 헐렁한 자서전이다. 비싼 물건이라서가 아니다. 오래 보관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의 생활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은 뒤 나는 티셔츠 한 장을 살 때도 전보다 겁이 많아졌다.
이 옷이 정말 내 티셔츠가 될 수 있을까. 두 번 입고 옷장 깊숙이 밀어 넣는다면 내가 티셔츠를 산 것이 아니라, 티셔츠에게 옷장 한 칸을 내준 셈이다. 계약 기간은 무기한이고 임대료는 선불이다.
티셔츠 앞에서 시작된 이 겁은 몸에 관해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약물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약이 내게 날씬한 삶을 갖게 해줄 수 있을까.
약은 실제로 체중을 줄인다. 식욕과 포만감에 작용하고, 이전에는 의지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약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몸을 가짜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안경을 쓰고 보는 풍경이 가짜가 아닌 것과 비슷하다.
다만 약으로 얻은 체중 감소가 치료를 중단하는 순간에도 자동으로 남아 있는 영구 소유물은 아니다.
세마글루타이드 임상시험의 연장 관찰에서 참가자들은 68주간 치료한 뒤 평균 17.3%의 체중을 줄였다. 그러나 약물과 체계적인 생활중재를 중단한 다음 1년 동안 11.6%포인트가 다시 증가했다. 감량했던 체중의 약 3분의 2가 돌아온 셈이다.
티르제파타이드 중단 연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나타났다. 약물로 체중을 10% 이상 줄인 참가자 308명 가운데 82.5%가 중단 후 1년 안에 자신이 감량한 체중의 25% 이상을 다시 얻었다. 절반가량은 감량분의 절반 이상을 되찾았고, 네 명 중 한 명은 감량분의 75% 이상을 되찾았다. 약 9%는 줄였던 것보다 더 많은 체중이 증가했다.
한두 연구만의 결과도 아니다. 2026년 발표된 체중조절 약물 중단 연구 37편, 참가자 9,341명을 종합한 분석에서는 약을 끊은 뒤 한 달 평균 약 0.4킬로그램씩 체중이 증가했고, 평균적으로 약 1.7년 뒤 치료 전 체중으로 돌아갈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평균은 개인의 운명을 예언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중단하면 반드시 원래 체중으로 복귀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꽤 분명해 보인다. 몸은 결제를 마쳤다고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약을 복용하는 몇 달 동안 얻은 변화를, 배송이 끝난 완제품처럼 생각하는 마음이다. 목표 체중에 도착했으니 이제 치료도 관리도 끝났다고 믿는 순간이다. 비만은 종종 끝내고 졸업하는 과제라기보다, 그때그때 조건에 맞춰 오래 조율해야 하는 문제에 가깝다.
그렇다고 진정한 소유를 반드시 ‘약 없이 혼자 해내는 것’으로 정의할 필요도 없다.
약을 장기간 사용하며 몸의 변화를 조절하는 일이 한 사람의 생활에 들어온다면, 그 약 역시 그의 것이 될 수 있다. 혈압약이나 안경처럼 몸과 함께 살아가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약을 잠깐 빌려 숫자만 바꾼 뒤, 이전과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면서 결과만 남기를 바란다면 날씬함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세입자에 가까울 수 있다.
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 옆에서 숫자를 세고 소리를 질러야만 가능한 운동이 있다. 예약을 취소하면 죄책감을 보내고, 하루 빠지면 의지를 심문하는 운동이다. 그런 도움으로 몸이 변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남의 시간표와 규율을 빌리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그 운동이 언젠가 내 것이 되려면 혼자서도 다시 꺼낼 수 있어야 한다.
매일 같은 강도로 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속도를 낮추고, 무릎이 불편하면 종목을 바꾸고, 일이 바쁘면 며칠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밀어붙이는 능력보다 중단과 재개를 조절하는 능력이 오히려 소유에 가깝다.
몸은 생활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그 거울에는 생활만 비치는 것이 아니다. 유전과 질병, 노동시간과 수면, 돈과 돌봄, 우울과 불안도 함께 비친다. 몸의 모든 모양을 성실함이나 나태함의 결과로만 읽는 것은 지나치게 간편하다.
그래도 자신에게 물어볼 수는 있다.
나는 날씬한 몸을 갖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날씬한 몸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원하는 것인가.
앞의 질문은 결과를 주문한다. 뒤의 질문은 시간을 요구한다.
약도 운동도 그 시간을 건너뛰게 해주는 비밀 통로는 아니다. 다만 지나가기 어려운 시간을 조금 덜 힘들게 건너게 해주는 손잡이가 될 수 있다. 손잡이를 잡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다만 손잡이와 목적지를 혼동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요즘 나는 티셔츠를 살 때 오래 입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옷이 내 생활과 함께 낡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몸도 아마 비슷하다.
내 것이 되는 일은 대개 얻는 순간보다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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