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가 떠난 자리

환자는 검사 결과지를 여러 장 들고 왔다.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표시된 항목이 많았다. 밀가루, 달걀, 우유에 반응이 있었고 장내 유익균은 부족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부신이 지쳤으며, 위산도 모자란다고 했다.

설명은 이미 들었다. 피로는 부신 때문이고, 복부 팽만은 음식 과민반응 때문이며, 두통은 장내 환경이 나빠서 생긴다고 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증상들이 한 줄로 연결됐다. 환자는 처음으로 자기 몸의 비밀을 알아낸 듯했다.

해결책도 준비돼 있었다.

피해야 할 음식 목록, 베타인, 소화효소, 유산균, 장 점막을 회복시킨다는 분말, 스트레스에 좋다는 영양제. 검사 결과와 상품 목록은 오래전부터 서로를 기다려온 것처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환자가 물었다.

“검사에서 이렇게 나왔는데 왜 선생님은 치료를 안 해주시나요?”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검사에서 수치가 나왔다는 것과 그것이 증상의 원인이라는 것은 다르다고. 음식에 대한 특정 항체가 검출됐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음식을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장내세균의 구성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과, 검사표에 적힌 몇 가지 균을 늘리면 피로와 두통이 낫는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니라고.

환자의 얼굴에는 실망이 번졌다.

앞의 의사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나는 설명의 대부분이 아직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확신을 받은 뒤 의심을 듣는 일은 대개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침에서 펩신을 찾는 검사도 그럴듯하다. 펩신은 위에서 만들어지니 침이나 목에서 발견된다면 역류의 흔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도 있고, 진단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논의된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정확한지, 결과만으로 치료 방향을 정해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진료실 밖으로 나오면 문장은 짧아진다.

“펩신이 검출됐습니다. 역류입니다.”

의학에서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사라진 자리에 결제 항목이 들어간다.

베타인도 비슷하다. 위산이 부족한 일부 상황에서 위 안의 산도를 일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성 피로, 소화불량, 피부 문제, 영양 흡수 장애의 원인을 모두 설명한다는 뜻은 아니다.

상업적인 이야기는 대개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위산이 부족하다. 그래서 단백질을 소화하지 못한다. 영양소가 흡수되지 않는다. 장내세균이 흐트러진다. 장벽이 약해진다. 염증이 퍼진다. 피곤하고 우울하고 살이 찐다.

처음과 끝 사이에는 건너뛴 계단이 많지만, 설명은 놀랍도록 매끄럽다. 연구가 멈춘 자리에서 이야기는 계속 걸어간다.

음식 과민반응 검사도 좋은 상품 구조를 갖는다. 수십 가지, 많게는 백 가지가 넘는 음식에 줄을 세운다. 평소 자주 먹던 음식일수록 양성으로 표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과표는 ‘현재 많이 먹고 있는 음식’이 아니라 ‘몸을 공격하는 음식’처럼 해석된다.

환자는 우유와 달걀과 밀가루를 끊는다. 때로는 콩, 견과류, 생선까지 빠진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들수록 치료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은 커진다. 증상이 좋아지면 검사가 맞았던 것이고, 좋아지지 않으면 아직 장이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검사는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 늘 환자의 회복이 덜 됐을 뿐이다.

장내 미생물 검사도 비슷한 길을 간다. 대변 한 통을 보내면 내 장의 생태계가 색색의 그래프로 돌아온다. 다양성이 부족하고, 염증과 관련된 균이 많으며, 유익균이 적다는 설명이 붙는다. 이어서 맞춤형 유산균과 프리바이오틱스, 식이 프로그램이 제안된다.

사람의 장내 미생물이 건강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다. 식습관과 약물, 질병에 따라 장내세균 구성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복잡한 사실이 어느 순간 몇 가지 수치와 한 달치 분말로 번역된다는 데 있다.

속기 쉬운 거짓은 완전한 거짓이 아니다. 적절한 양의 진실이 들어간 거짓이다.

유산균은 어떤 상황에서는 도움이 된다. 특정 음식을 먹고 불편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소화와 수면에 영향을 준다. 위산 분비가 부족한 사람도 존재한다. 한약이나 침 치료 역시 증상과 질환에 따라 연구된 영역이 있고,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작은 진실 여러 개를 이어 붙인다고 큰 결론이 자동으로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불확실한 단서를 확정된 원인으로 바꾸는 속도다. 가능성을 병명처럼 말하고, 병명을 상품 구매 목록으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일부 기능의학 진료에서는 검사부터 시작한다. 음식 항체, 타액 호르몬, 장내세균, 유기산, 모발 미네랄. 결과가 나오면 부족한 것은 채우고, 많은 것은 빼며, 흐트러진 것은 정돈해야 한다. 대개 영양제는 여러 통이 되고, 몇 달 뒤에는 같은 검사를 반복한다.

몸은 계속 관리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된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어도 안심하기 어렵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불균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쁘면 치료가 필요하고, 좋아지면 치료가 효과가 있었으니 유지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다음 결제로 이어진다.

상업화된 한방 진료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볼 수 있다. 피곤하고 잠이 안 오고 소화가 불편한 사람에게 체질과 기혈, 담음과 어혈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설명은 환자의 여러 증상을 한꺼번에 품어준다. 그리고 체질에 맞춘 탕약, 공진단, 경옥고, 약침, 정기적인 보강 치료가 이어진다.

개념이 넓을수록 환자를 놓치지 않는다. 피곤해도 해당되고, 잠이 안 와도 해당되며, 몸이 차거나 열이 많아도 설명할 수 있다. 치료 후 좋아지면 기혈이 회복된 것이고, 잠시 더 불편하면 몸이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거중심의학은 언제나 옳은 의학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에 가깝다. 개인의 경험은 편향될 수 있고, 유명한 의사의 확신도 틀릴 수 있으며, 오늘의 표준치료가 내일 진료지침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나 역시 십 년 넘게 사용해온 약의 쓰임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한때 당연하게 처방하던 약이 어느 날 진료지침의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전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던 부작용이 새로 반영되기도 했다.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치료의 이득이 생각보다 작았다는 연구도 나왔다.

오래 처방했다는 사실은 내가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환자가 좋아졌다는 기억 역시 치료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배운다. 어제의 처방을 오늘 의심한다. 오래된 지식을 버리고, 익숙한 설명을 수정한다.

이것은 현대의학의 약점처럼 보인다.

반면 확신을 파는 사람은 좀처럼 수정할 필요가 없다. 치료가 듣지 않으면 용량이 부족했거나 기간이 짧았다고 하면 된다. 식단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았거나 스트레스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불편함이 심해지면 몸이 정화되는 과정, 균형을 되찾는 과정, 오래된 문제가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 체계에서는 치료가 실패하지 않는다.

늘 환자가 아직 충분히 치료되지 않았을 뿐이다.

근거중심의학은 그에 비해 볼품없다. 답변은 길고 결론은 흐리다.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크지 않다고 말한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과 눈앞의 환자가 다를 수 있다고 덧붙인다. 부작용과 비용도 함께 따진다. 몇 년 뒤에는 자신이 했던 말을 취소하기도 한다.

아픈 사람은 그런 겸손을 반기기 어렵다. 이유를 알고 싶고, 낫고 싶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보다 “당신은 부신이 지쳤습니다”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색깔이 칠해진 검사표는 막연한 고통에 이름을 붙여준다. 원인이 보이면 통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불안을 알아본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차지한다.

최근 경주의 한 지역에서 어린이보호구역 불법주차를 꾸준히 신고한 사람을 두고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는 보도를 봤다. 오랫동안 해오던 주차라는 이유로 불법은 관습이 됐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그것을 신고한 사람은 동네의 질서를 깨뜨린 사람처럼 취급됐다.

그 장면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의학에서도 충분한 근거를 요구하는 사람은 자주 방해꾼이 된다. 아직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하면 폐쇄적이고 고루한 의사로 불린다. 환자의 선택을 무시하고 새로운 치료를 억압한다는 비난도 받는다.

반면 검사 하나로 여러 증상의 원인을 찾아내고, 마침 같은 곳에서 파는 영양제와 탕약과 수액으로 해결해주겠다는 사람은 환자 편에 선 혁신가가 된다.

규칙을 지적한 사람이 공동체를 불편하게 만들고, 근거를 요구한 사람이 환자의 희망을 빼앗는다.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근거는 느리다. 임상시험은 돈과 시간이 들고, 결과는 자주 애매하다. 연구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린다.

장사는 빠르다.

오전에 검사하고 오후에 원인을 찾는다. 결과표 옆에는 이미 영양제와 한약과 수액 패키지가 준비돼 있다. 한 번의 진단으로 장기 고객이 만들어진다.

의학이 불확실성을 고백하는 동안 장사는 불확실성에 이름을 붙인다.

장 누수. 부신 피로. 음식 과민반응. 독소. 체질 불균형.

이름이 생기면 상품이 생긴다. 상품이 생기면 병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배운 의사는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 몇 가지 검사와 설명으로 세상의 병을 연결한 사람은 좀처럼 틀리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요즘에는 두 번째 사람이 더 믿음직해 보인다.

과학이 밀려나는 것은 답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틀릴 수 있다는 고백은 상품이 되기 어렵고, 확신은 언제든 세트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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