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르니까 : 방어적 처방이 평생의 병력을 만들어주는 과정

“대상포진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환자가 병력을 말한다. 언제였느냐고 묻는다. 몇 년 전이란다. 어디에 수포가 생겼느냐고 물으면 잠시 표정이 흐려진다.

“수포는 없었어요. 옆구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대상포진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약을 빨리 먹어서 물집이 안 생긴 것 같아요.”

이쯤 되면 더 물어봐도 이야기는 대개 비슷하다. 한쪽 옆구리나 등, 가슴이 찌릿했다. 의사는 피부를 살펴봤지만 특별한 병변은 없었다. 그래도 대상포진은 초기에 치료해야 한다며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했다. 환자는 약을 먹었다. 수포는 끝내 생기지 않았다.

병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병력은 완성됐다.

진료실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혹시 모르니까.”

확실히 대상포진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만일에 대비하자는 말이다. 의사에게는 잠정적인 판단이고, 환자에게는 사실상 진단이다. 처방전까지 받는 순간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조용히 사라진다. 남는 것은 대상포진이라는 병명과 항바이러스제를 먹었다는 기억뿐이다.

몇 년이 지나면 환자는 “대상포진이 의심됐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상포진을 앓았습니다.”

의심은 진료실에서 태어나지만 확진은 기억 속에서 이루어진다.

대상포진은 대개 통증을 동반한 수포성 발진이 한쪽 피부분절을 따라 나타나는 질환이다. 통증이나 따끔거림이 발진보다 며칠 먼저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발진이 없는 통증만으로 대상포진을 진단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수포 없이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는 이른바 무발진 대상포진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 존재가 설명되지 않는 모든 통증을 대상포진으로 바꾸어주지는 않는다. 무발진 대상포진은 임상 양상만으로 확진하기 어려우며, 상황에 따라 PCR이나 항체검사 등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뒷받침하는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드문 병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흔한 통증을 그 병으로 간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형적인 발진이 있는 경우에도 임상 진단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50세 이상이면서 의사가 임상적으로 대상포진이라고 판단한 발진 환자 260명을 조사한 일차진료 연구에서 혈청검사로 진단이 뒷받침된 비율은 90.8%였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동시에 비교적 전형적인 발진이 있는 환자들 가운데서도 일부는 대상포진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수포도 없고 통증만 있다면 확신의 근거는 당연히 더 약해진다.

그런데 현실의 진료에서는 근거의 강도와 처방의 속도가 반드시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환자는 대상포진을 두려워한다. 늦게 치료하면 평생 신경통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들었다. 옆집 사람은 골든타임을 놓쳐 몇 달을 고생했다고 말했다. 검색창에는 ‘대상포진 초기 증상’이라는 이름 아래 등 통증, 피로, 따끔거림, 감각 이상처럼 웬만한 성인이 한 번쯤 겪는 증상들이 줄지어 있다.

병원에 도착할 때 환자의 질문은 이미 좁아져 있다.

“대상포진 아닌가요?”

의사에게도 처방은 편리한 선택이다.

“지금은 확실하지 않으니 피부 변화를 관찰하고 다시 보자”고 설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변화가 생기면 다시 와야 하는지, 다른 가능한 원인은 무엇인지, 즉시 평가해야 할 위험 신호는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환자는 약을 받지 못했다며 불안해할 수 있다. 며칠 뒤 실제 수포가 생기면 “그때 약을 줬어야 하지 않느냐”는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반면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면 진료는 매끄럽게 끝난다. 환자는 안심하고, 의사는 병을 놓쳤다는 비난에서 조금 멀어진다. 약값과 며칠간의 복용으로 불확실성을 덮을 수 있다면 모두에게 싸게 느껴진다.

처방에는 약리학적 효과 말고도 서사적 효과가 있다.

항바이러스제를 먹은 뒤 수포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것이 처음부터 대상포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약을 빨리 먹어서 수포가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도 증명하지 못한다. 어느 쪽도 확인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난다.

그러나 사람은 애매한 결말보다 인과관계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통증이 있었다.
의사가 대상포진일 수 있다고 했다.
약을 먹었다.
큰일을 막았다.

이렇게 정리하면 깔끔하다. 진료기록에는 ‘대상포진 의증’이나 단순한 증상 코드가 남았을지 몰라도 환자의 머릿속에는 성공적으로 치료한 대상포진 한 차례가 저장된다.

의사의 물음표는 환자의 기억에서 지워진다.

그 병력은 다음 진료에도 따라온다. 비슷한 통증이 생길 때마다 환자는 재발을 의심한다. 다른 의사는 “과거 대상포진 병력”이라는 말을 전제로 진료를 시작한다. 다시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할 가능성도 커진다. 최초의 불확실한 판단이 다음 판단의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의심이 의심을 증명한다.

항바이러스제는 실제 대상포진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다. 아시클로버, 발라시클로버, 팜시클로버 등은 새로운 피부 병변의 발생을 줄이고 병변의 회복을 앞당기며 급성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치료 효과는 발진이 발생한 뒤 72시간 안에 시작할 때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중심은 ‘포진의 발생’이다.

몸 어딘가가 찌릿한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72시간 안에 약을 먹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의학적 시간 기준은 대중의 언어로 옮겨지는 동안 종종 초조함을 생산하는 경보음으로 변한다.

물론 모든 환자에게 수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눈이나 귀 주변의 증상, 안면마비를 포함한 신경학적 이상, 면역저하 상태처럼 합병증 위험이 큰 상황은 판단의 문턱이 달라야 한다. 고위험군과 비전형적 대상포진을 놓치지 않으려는 신중함은 필요하다.

다만 드문 예외가 흔한 통증에 약을 붙여주는 만능 허가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약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사실도 진단을 생략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항바이러스제는 신장 기능과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용량을 조절해야 하며, 고령자와 신기능 저하 환자에서는 부작용 가능성을 더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대체로 안전한 약과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약은 같은 말이 아니다.

방어적 처방은 대개 악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친절과 불안이 섞인 결과에 가깝다. 환자는 최악의 가능성을 막고 싶고, 의사는 최악을 놓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양쪽의 마음은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의사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질병을 대비한 처방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인정한 질병이다. 같은 처방전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확진을 기억한다.

의학에서 “혹시 모르니까”는 공짜가 아니다.

그 말은 다른 원인을 살펴보는 일을 미룰 수 있다. 근육과 관절의 통증, 척추에서 비롯된 신경 증상, 내장 질환, 다른 피부질환이 대상포진이라는 익숙한 이름 아래 가려질 수 있다. 무엇보다 아직 알 수 없는 상태를 이미 알아낸 상태로 바꾼다.

관찰은 무책임한 방치가 아니다. 현재 확인되는 소견이 무엇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증상이 생기면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도 진료다.

어쩌면 약을 처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고가 드는 진료다. 처방전은 한 장이면 되지만 불확실성은 문장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확실하지 않은 병을 확실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병명을 받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서는 일도 반드시 진료의 실패는 아니다. 그러나 의료가 빠른 결론과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할수록 모른다는 말은 무능처럼 들리고, 약은 성의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수포도 없는 상태에서 대상포진 치료를 받는다.

약은 일주일 뒤 끝나지만, 그날 받은 병명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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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Zhou J, Li J, Ma L, Cao S. Zoster sine herpete: a review. Korean J Pain. 2020;33(3):208-215.

3. Opstelten W, van Loon AM, Schuller M, et al. Clinical diagnosis of herpes zoster in family practice. Ann Fam Med. 2007;5(4):30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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