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가르친 것은 의학 교과서도 논문도 아니었다. 대기실 벽보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에게 그 이름은 냉장고에서 왔다.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음료 이름치고는 너무 길었다. 광고 문구치고는 너무 의학적이었다. 당시 발효유는 대체로 장을 말했다. 장이 편하다. 장이 활발하다. 장이 웃는다. 그런데 윌은 갑자기 위를 들고나왔다. 장 아래쪽에서 벌어지던 유산균 전쟁이 위쪽으로 올라온 셈이다.
2000년 출시된 윌은 위 건강 발효유라는 시장을 열었다. 2001년부터는 배리 마셜 박사가 광고모델로 등장했다.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와 위염, 소화성 궤양의 관련성을 밝힌 인물이고,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조합은 너무 강했다. 낯선 균의 이름, 노벨상 과학자, 매일 마실 수 있는 발효유. 과학과 마케팅과 냉장 유통이 한 병 안에서 만났다.
그 뒤로 헬리코박터는 국민 악당이 되었다.
위염도 네 탓. 속쓰림도 네 탓. 입냄새도 네 탓. 위암도 네 탓.
물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중요한 균이다. 이 균은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일부 위 림프종과 관련이 있고, 위암의 위험요인으로 분류된다. 국제암연구소는 헬리코박터 감염을 위암의 1군 발암요인으로 본다. 한국처럼 위암이 흔한 나라에서 이 균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요인이라는 말과 암 선고라는 말 사이에는 꽤 넓은 거리가 있다. 이 거리가 사라질 때 장사가 시작된다.
국립암센터는 전 세계 인구의 약 절반이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우리나라 감염률도 40~50% 정도로 본다. 한국인 둘 중 하나꼴이다. 이쯤 되면 헬리코박터는 침입자라기보다 오래된 세입자에 가깝다. 마음에 드는 세입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발견 즉시 특공대를 투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흔하다는 것과 당장 없애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위험요인이라는 것과 암 예약표는 다르다.
유산균 음료라는 것과 제균치료는 더더욱 다르다.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헬리코박터를 없애려면 윌을 하루에 몇 개나 먹어야 하느냐고.
이 질문은 우스우면서도 정확하다. 한국 건강 소비의 비극을 이보다 간단히 요약하기 어렵다. 병원에서는 균을 말하고, 광고는 위 건강을 말하고, 소비자는 둘을 슬쩍 이어 붙인다. 그러고는 묻는다. 몇 병이면 됩니까.
정답은 몇 병이 아니다. 그런 계산식은 없다. 윌을 한 병 마셔도 제균치료가 아니고, 열 병 마셔도 제균치료가 아니다. 많이 마신다고 발효유가 항생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총을 많이 쏜다고 소방차가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는 보통 위산억제제와 항생제 여러 가지를 정해진 기간 복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이건 냉장고에서 하나 꺼내 마시는 문제가 아니다. 약 봉투가 두꺼워지고, 복용 횟수가 늘고, 부작용과 내성을 같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시장은 복잡한 설명을 싫어한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위암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는 길고 밋밋하다.
“위암균”은 짧고 강하다.
짧고 강한 말은 사람을 움직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지갑을 움직인다.
결과지에 “헬리코박터 양성”이라고 찍히면 사람은 이미 반쯤 환자가 된다. 의사는 경우에 따라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환자는 내 안에 암의 씨앗이 있다고 듣는다. 설명은 확률로 말하지만, 불안은 운명으로 번역한다. 그 번역 과정에서 항생제가 나온다. 약 봉투가 나오고, 재검 일정이 나오고, “박멸”이라는 군사적 단어가 나온다.
박멸.
이 단어는 참 편하다. 몸속의 나쁜 것을 찾아내 없앴다는 느낌을 준다. 수사, 검거, 처형, 확인. 서사가 완벽하다. 몸은 갑자기 범죄 드라마가 된다. 균 하나만 잡으면 사건이 종결될 것 같다.
그러나 실제 기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준에서 헬리코박터 감염이 확인된 경우 제균요법의 급여 인정 대상은 소화성궤양, 저등급 MALT 림프종, 조기 위암 절제술 후,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위선종 내시경절제술 후 등으로 정리된다. 위암 가족력, 위축성 위염, 기타 진료상 필요해 환자가 동의한 경우는 별도 기준으로 약값 전액 부담 대상에 들어간다. 감염자가 그토록 많은 것에 비하면, 공적 기준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은 대상은 생각보다 좁다.
국립암센터의 설명은 더 직설적이다. 헬리코박터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으로는 특별히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다만 소화성 궤양, 조기위암, 위 림프종 등이 있는 경우 항생제로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요구르트 같은 기능식품에 대해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유산균이 헬리코박터 감염을 치료한다는 근거는 부족하다고 적고 있다.
이 차분한 문장들은 이상하게 잘 퍼지지 않는다. 대신 잘 퍼지는 것은 이런 말들이다.
“그거 위암균이래.”
“양성이면 없애야지.”
“윌 많이 마셔.”
“항생제 먹고 끝내.”
의학은 확률과 적응증을 말한다. 시장은 악당과 해결책을 말한다. 대중은 대개 후자를 더 잘 기억한다.
헬리코박터는 공포 마케팅에 아주 좋은 소재다. 이름이 어렵다. 몸속에 숨어 산다. 위암과 연결된다. 검사로 찾을 수 있다. 치료 성공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보다 아름다운 상품 구조가 어디 있나. 검사하고, 놀라고, 치료하고, 다시 확인한다. 균은 작지만 시장은 크다.
더구나 균 하나는 설명이 쉽다. 짠 음식, 흡연, 음주, 나이, 가족력, 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 우연, 오래된 생활의 모양 같은 것들은 복잡하다. 책임 소재도 흐릿하다. 반면 헬리코박터는 선명하다. 현미경 아래에 있고, 결과지에 찍히고, 약으로 없앨 수 있다. 인간은 복잡한 삶보다 박멸 가능한 적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헬리코박터는 너무 유명해졌다. 균보다 별명이 먼저 걷는다. 위장 속 세균이 아니라 국민 악당이 되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제로 치료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득실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공포는 이런 구분을 싫어한다. 공포는 모두를 같은 줄에 세운다. 양성이면 치료. 치료하면 안심. 안심이 부족하면 재검. 그래도 찜찜하면 발효유.
항생제는 부적이 아니다. 유산균 음료도 면죄부가 아니다. 제균 성공 문자는 위암 면제권이 아니다. 몸은 그렇게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균을 없애도 위암 위험이 0이 되는 것은 아니고, 균이 있어도 모두 암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 당연한 말이 자꾸 밀려난다. 당연한 말은 광고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윌은 아마 많은 사람에게 헬리코박터라는 이름을 처음 가르쳤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광고다. 한때 낯설었던 균의 이름을 국민 상식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이름은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오해되기 시작한다. 헬리코박터는 그렇게 유명해졌다. 너무 유명해져서, 이제 사람들은 균을 알기 전에 먼저 겁을 낸다.
검진 결과지에 양성이 찍힌다. 사람은 그 글자를 오래 본다. 자신이 반쯤 망가진 위를 가진 사람처럼 느낀다. 냉장고에는 발효유가 있고, 약국에는 항생제가 있고, 병원에는 다음 검사 예약표가 있다.
균은 위에 산다.
공포는 훨씬 넓은 곳에 산다.
1. Jung HK, Kang SJ, Lee YC, Yang HJ, Park SY, Shin CM, et al. Evidence based guidelines for the treatment of Helicobacter pylori infection in Korea 2020. Korean J Intern Med. 2021;36(4):807-838.
2. National Cancer Center. Helicobacter pylori [Internet]. Goyang: National Cancer Center; 2023 Jun 13 [cited 2026 Jul 6]. Available from: National Cancer Center cancer information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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