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비급전: 몸은 무협지를 읽지 않는다

무협지를 보면 늘 그렇다.

정파는 지루하다. 예법이 많고, 절차가 길고, 수련은 고되다. 검을 잡는 법부터 배워야 하고, 호흡을 익혀야 하고, 스승의 잔소리를 견뎌야 한다. 당장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면 천년 묵은 영약을 먹고 절세고수가 될 것 같은데, 정파의 장문인은 오늘도 말한다.

“기초부터 하거라.”

그러니 사파가 매력적이다.
한 방이 있다. 비급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묘약이 있다. 남들은 평생 수련해도 못 얻는 힘을 깊은 동굴에서 우연히 얻는다. 금지된 독공은 위험하지만 빠르다. 몸이 상할 수 있지만 강해진다. 무엇보다 사파에는 이야기의 속도가 있다.

개구충제가 항암제로 둔갑했던 일도, 어쩌면 그런 무협의 구조와 닮았다.

항암치료는 정파의 수련법처럼 보인다. 일정이 있고, 검사 수치가 있고, 부작용 설명이 있고, 동의서가 있다. 약 이름은 낯설고, 치료 과정은 길며, 결과는 늘 확률로 말해진다. 의사는 “반응을 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환자 입장에서 이 말은 참 맥 빠진다. 몸속에서는 전쟁이 났는데, 사령관이라는 사람은 지도 위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때 사파의 전령이 나타난다.

“개구충제로 암이 나았다더라.”

이 한 문장은 너무 강하다. 논문보다 짧고, 설명보다 쉽고, 통계보다 따뜻하다. 미국의 조 티펜스라는 사람이 펜벤다졸을 먹고 말기 암에서 회복됐다고 주장한 이야기는 온라인을 타고 퍼졌다. 다만 이 이야기에는 자주 빠지는 장면이 있다. 그는 그 무렵 면역항암제 임상시험에도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암협회는 펜벤다졸이 동물 기생충 치료에 쓰이는 약이며, FDA가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승인한 적이 없고,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암 치료제라는 근거도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파의 비급은 원래 각주를 싫어한다.
각주가 붙는 순간 신비가 줄어든다.

국내에서도 이 이야기는 빠르게 번졌다. 폐암 투병 중이던 코미디언 김철민 씨가 펜벤다졸 복용을 공개하면서 관심은 더 커졌다. 약국과 동물약품 쪽에서는 품귀 이야기가 나왔고,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는 “혹시 나도”라는 말이 돌았다. 김철민 씨는 이후 펜벤다졸과 알벤다졸 복용을 중단했고, 간 수치 상승과 암 전이 등을 언급하며 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도 사람 대상 항암 효과와 안전성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펜벤다졸 복용을 권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이상한 풍경이 생긴다.

항암제는 독하다고 한다. 맞다. 독하다. 독하지 않은 전쟁은 별로 없다. 그런데 그 독함 때문에 항암제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정작 사람에게 안전한 용량도, 장기 복용 자료도, 암 치료 효과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동물용 약에는 마음을 연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는 “부작용이 걱정된다”고 말하면서, 인터넷에서 본 복용법에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말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은 건강 앞에서 가장 위험한 말 중 하나다.
몸은 카지노 칩이 아니다.

그리고 개구충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암이라는 말 앞에는 늘 장사꾼들이 먼저 자리를 깐다. 그들은 흰 가운을 입지 않는다. 대신 자연, 면역, 해독, 기적, 체험담 같은 단어를 입는다. 말은 부드럽고 가격은 단단하다. 차가버섯 추출액, 상황버섯 분말, 살구씨 속 아미그달린, 알칼리수, 해독 주스, 면역을 깨운다는 이름 모를 캡슐들. 하나같이 표정은 선량하다. “치료제는 아니고요”라고 작게 말한 뒤, 바로 다음 줄에 “암 환자들이 많이 찾습니다”라고 크게 쓴다.

이쯤 되면 사파도 억울할 지경이다. 적어도 무협지의 사파 고수는 자기 무공이 독하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건강 장사꾼들은 독도 약처럼, 소문도 근거처럼, 불안도 선택권처럼 포장한다.

차가버섯은 특히 모범적인 사파 상품이다. 이름부터 좋다. 북방의 숲, 혹한, 자작나무, 자연의 힘. 설명만 들으면 암세포도 예의를 갖추고 물러날 것 같다. 실제로 실험실 수준의 연구나 항산화 성분 이야기는 흔히 붙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람에게 암 치료제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말은 없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는 차가버섯이 암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임상 근거가 부족하며, 고용량 섭취 뒤 옥살산 신장병증이 보고된 사례가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장기간 차가버섯을 섭취한 뒤 신장 손상이 보고된 논문들이 있다. 숲의 선물이 콩팥에는 청구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살구씨와 아미그달린, 이른바 비타민 B17이라는 이름으로 팔렸던 물건도 있다. 이름부터 사기성이 짙다. 비타민이라고 부르면 결핍을 메우는 느낌이 든다. 몸이 기다리던 조각을 이제야 찾아낸 것 같다. 하지만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라에트릴과 아미그달린이 미국에서 암 치료제로 승인되지 않았고, 독성은 청산가리 중독 증상과 닮아 간 손상, 신경 손상, 혼수, 사망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암세포만 골라 죽인다는 말은 늘 아름답다. 문제는 청산가리가 그렇게 예의 바른 물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에는 블랙살브라는 것도 있다. 검은 연고. 자연요법이라는 얼굴을 하고 피부암이나 점, 혹을 녹인다고 팔린다. 이름은 민간요법 같지만 실제로는 부식성 물질이다. FDA는 블랙살브가 피부와 조직을 파괴해 영구 손상과 감염을 일으킬 수 있고, 암 치료 효과가 입증된 제품이 아니라고 경고해 왔다. 이것은 치료라기보다 상처를 만들어 놓고 “뭔가 빠져나왔다”고 해석하는 의식에 가깝다. 사파의 비급이라기보다, 칼을 빼 들고 자기 살에 시험하는 장면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같은 문법으로 팔린다.

“병원에서는 안 알려줍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난리입니다.”
“자연에서 온 것이니 안전합니다.”
“항암 중에도 많이 드십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 비열하다. 권유는 그들이 하고, 책임은 환자가 진다. 클릭을 유도한 사람은 사라지고, 판매 페이지는 문구를 고치고, 댓글은 다음 기적담으로 이동한다. 남는 것은 몸이다. 신장 수치, 간 수치, 놓친 치료 시기, 가족의 후회, 뒤늦은 검색 기록. 간절한 사람의 지갑을 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간절함은 원래 비밀번호를 잘 잊어버린다.

그러니 이것을 단순히 “대체요법에 속았다”고 말하면 너무 점잖다. 어떤 장사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병든 사람이 붙잡고 있는 마지막 질서를 뜯어먹는다. 암세포를 굶기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판단력을 굶긴다. 그 위에 자연이라는 풀잎을 얹고, 면역이라는 향을 피우고, 체험담이라는 북을 친다.

사파는 늘 깊은 산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스마트폰 안에 산다.
알고리즘이 객잔 주인처럼 손짓한다.
“손님, 진짜 비급은 여기 있습니다.”

대체치료가 모두 사기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병원 치료가 언제나 완벽하고, 의학의 정론이 항상 부드럽고 친절했다는 말도 아니다. 정파에도 위선은 있다. 권위는 자주 무례하고, 설명은 부족하며, 병원 시스템은 사람을 사람보다 번호에 가깝게 다룰 때가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샛길을 찾는 마음을 비웃기만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사파가 주는 서사다.

사파는 환자에게 주인공 자리를 준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침대에 눕지만, 사파의 이야기 속에서는 환자가 비밀을 알아낸 사람이다. 남들이 모르는 길을 찾은 사람. 거대 제약회사와 무심한 의사들이 숨긴 진실을 발견한 사람. 항암치료를 받는 일은 어쩐지 끌려가는 느낌인데, 개구충제를 구해 먹는 일은 스스로 칼을 뽑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사파는 늘 “자기주도”의 얼굴을 하고 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기주도는 남의 체험담에 매우 의존적이다.

“어떤 사람이 나았다더라.”
“외국에서는 이미 한다더라.”
“의사들은 절대 말 안 해준다더라.”

이 말들은 무협지의 낡은 설정처럼 익숙하다. 절벽, 동굴, 비급, 은둔고수. 여기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도포를 입고 나타나면 완성이다. 썸네일에는 붉은 글씨가 박힌다. “암세포 박멸.” “의사들이 숨기는 진실.” “3개월의 기적.” 정파의 진료실은 10분 설명하고 끝나지만, 사파의 영상은 밤새 자동재생된다.

실제로 한국의 한 조사에서도 비처방 구충제를 암 치료 목적으로 복용한 암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온라인 정보의 영향을 받았고, 대부분은 주치의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보고됐다.
사파는 자기주도처럼 보이지만, 묘하게도 담당 의사에게는 비밀스럽다.
주인공이 된 것 같은데, 치료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도는 재미가 없다.
가벼운 운동을 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물을 마시고, 잘 자고, 부작용을 조절하고, 치료 반응을 보며 다음 단계를 정하는 일은 너무 평범하다. 피검사 수치와 영상 판독과 치료 일정표에는 무협의 향기가 없다. 그 길에는 천년설삼도 없고, 절세기연도 없다. 대신 기록이 있다. 실패했을 때 남는 자료가 있고, 부작용이 생겼을 때 돌아갈 담당자가 있고, 다음 환자에게 전해질 지식이 있다.

사파의 문제는 비주류라는 데 있지 않다.
책임이 증발한다는 데 있다.

개구충제를 권한 사람은 대개 사라진다. 영상을 올린 사람은 “선택은 본인 몫”이라고 물러선다. 댓글은 다른 영상으로 이동한다. 판매자는 품절 안내를 띄운다. 남는 것은 몸이다. 간 수치가 오르고, 치료 시기를 놓치고, 병이 진행되고, 가족들이 뒤늦게 검색창을 붙잡는다. 사파의 비급은 늘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름은 잘 남기지 않는다.

암이라는 말 앞에서 사람은 약해진다. 당연하다. 누구라도 그렇다. 그래서 기적담은 악질적일 정도로 달콤하다. “해볼 만하다”는 말은 치료보다 빠르게 퍼진다.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은 너무 느리고, 너무 차갑고, 너무 재미없다.

그래도 몸은 재미없는 쪽에서 오래 버틴다.
대부분의 생존은 드라마가 아니라 반복이다.

검사, 처방, 식사, 수면, 통증 조절, 다시 검사. 이 밋밋한 길을 걷는 동안 사람은 종종 초라해진다. 그래서 자꾸 옆을 본다. 저 숲속에 더 빠른 길이 있을 것 같다. 남들이 모르는 문파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만 허락된 비급이 있을 것 같다.

있을지도 모른다.
무협지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몸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1. Song B, Kim KJ, Ki SH. “Experience with and perceptions of non-prescription anthelmintics for cancer treatments among cancer patients in South Korea.” PLOS ONE, 2022;17(10).

2.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Chaga Mushroom. About Herbs. Available from: https://www.mskcc.org/cancer-care/integrative-medicine/herbs/chaga-mushroom

3. National Cancer Institute. Laetrile/Amygdalin (PDQ®)–Health Professional Version. PDQ Cancer Information Summaries. Available from: https://www.cancer.gov/about-cancer/treatment/cam/hp/laetrile-pdq

4.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Illegally Sold Cancer Treatments. FDA Consumer Updates. Available from: https://www.fda.gov/consumers/health-fraud-scams/illegally-sold-cancer-treat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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