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곤한데 간이 안 좋은가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간은 중요한 장기이고, 실제로 간 질환이 피로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피로를 무조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질문 뒤에 자주 붙는 문장이 있다.
“술은 좀 마십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피로가 간 때문인지 묻기 전에, 간에게 무슨 짓을 해왔는지부터 물어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은 이상하게 자기 몸을 회사 직원처럼 대한다. 밤새 야근을 시켜놓고 다음 날 아침 표정이 왜 안 좋으냐고 묻는다. 회식, 야식, 술, 수면 부족, 운동 부족을 한꺼번에 던져놓고 몸이 평소처럼 출근하길 바란다. 그러다 검사 수치 하나가 올라가면 갑자기 억울해한다.
“제가 왜 이러죠?”
몸 입장에서는 황당할 것이다.
계속 보고서를 올렸는데 아무도 읽지 않은 셈이니까.
한국에서 술은 너무 오래 예외였다. 기름진 음식은 줄여야 하고, 단 음식은 조심해야 하고, 담배는 끊어야 한다. 그런데 술은 이상하게 협상 대상이 된다.
“사회생활인데요.”
“스트레스가 많아서요.”
“한두 잔인데요.”
“남들도 다 마시는데요.”
남들도 다 한다는 말은 건강 앞에서 별 쓸모가 없다. 남들도 같이 망가지면 덜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단체로 비를 맞는다고 젖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술을 마시면서 술을 마시지 않은 몸을 요구하는 태도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자주 자기만의 회계를 만든다. 소주 한 병은 술이지만, 와인 두 잔은 분위기다. 맥주는 가볍다. 막걸리는 전통이다. 폭탄주는 친목이다. 혼술은 위로다. 이렇게 이름을 바꾸다 보면 알코올은 어느새 문화재가 된다. 몸에 들어가는 것은 똑같은데, 포장지만 계속 바뀐다.
술은 감정적으로는 위로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몸은 문학적으로 해석해주지 않는다. 알코올은 알코올이다. 간은 술자리의 사정을 모른다. 상사가 권했는지, 친구 생일이었는지, 기분이 우울했는지 따지지 않는다. 들어온 것을 처리할 뿐이다. 간은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장기라서 그렇다.
술을 마시고 숙취해소제를 먹는 모습은 꽤 상징적이다. 밤새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놓고 아침에 공기청정기를 켜는 일과 비슷하다. 공기청정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어젯밤을 삭제하지는 못한다. 숙취해소제도 술을 건강식품으로 바꿔주지 않는다. 그저 죄책감에 붙이는 작은 스티커에 가깝다.
건강검진 전날 술을 참는 사람도 있다. 그 하루의 금욕으로 몇 년 치 생활이 세탁되길 바란다. 마치 시험 전날 책상 정리를 하면 공부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몸은 그렇게 쉽게 속지 않는다. 검사지는 도덕 시험지가 아니지만, 가끔은 일기장처럼 보인다. 어제 먹은 것보다 오래 반복한 습관이 거기에 묻어난다.
술의 가장 교활한 점은 즐거움을 빨리 준다는 것이다. 잔을 부딪치는 순간 어색함이 줄고, 말이 풀리고, 하루가 조금 덜 구질구질해 보인다. 싸고 빠른 행복이다. 문제는 이 행복이 대출이라는 점이다. 당장은 기분을 빌려주지만, 다음 날 이자를 받는다. 숙취, 불면, 후회, 부은 얼굴, 무너진 리듬, 다시 피곤한 몸.
그러고 나서 묻는다.
“피로는 간 때문인가요?”
간은 억울하다.
간은 원인이 아니라 현장 직원에 가깝다. 위에서 계속 사고를 치는데, 뒤처리는 간이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고 친 쪽을 보지 않고 청소하는 쪽을 의심한다. 왜 이렇게 청소가 늦냐고, 왜 냄새가 남냐고, 혹시 청소부가 문제 아니냐고 묻는다.
술을 몸에 대한 일상적 악행으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술은 몸 안에 작은 화재를 내놓고, 다음 날 물걸레질을 하며 “이 정도면 깨끗하지 않냐”고 묻는 일에 가깝다. 불은 났고, 연기는 스몄고, 냄새는 남았다. 그런데 사람은 바닥만 닦고 안심한다. 숙취가 사라졌다고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기억이 흐릿하다고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 일부가 술자리를 예전만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그래서 반가운 변화다. 술을 못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안 마신다고 말하는 사람들. 회식보다 운동을 택하고, 2차보다 러닝화를 택하고, 숙취 섞인 일요일보다 맑은 토요일 아침을 택하는 사람들. 예전 같으면 재미없다고 불렸을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시간을 지키는 사람처럼 보인다.
술자리를 빠지는 사람이 사회성이 없는 게 아니다.
어쩌면 자기 몸과의 사회성이 조금 더 좋은 것일 뿐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인간은 원래 자기 몸에 불리한 일도 하며 산다. 케이크를 먹고, 밤을 새우고, 앉아서 오래 일하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술을 계속 마시면서 몸이 조용히 버텨주길 바라는 태도. 술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피로만 사라지길 바라는 기대. 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그 얌체 같은 건강관.
피로는 간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자주, 간은 마지막에 불려 나온 목격자일 뿐이다.
술잔은 늘 사람 손에 들려 있었다.
간은 한 번도 건배를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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