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때보다 건강에 몰두하는 시대에 산다.
혈당을 재고, 수면을 기록하고, 영양제 성분표를 읽고, 아이가 먹는 과자의 첨가물에는 눈을 부릅뜬다. 유기농인지, 무항생제인지, 글루텐 프리인지 따진다.
그런데 바로 그 사회에서 백신 불신도 같이 자란다. 유기농 식재료에는 신중하고, 아이가 먹는 간식의 첨가물에는 분노하면서, 수십 년 동안 감염병을 밀어낸 백신 앞에서는 갑자기 “자연”과 “선택권”과 “숨겨진 진실”을 말한다. 몸을 보호하고 싶다는 욕망이, 때로 몸을 가장 오래 보호해온 장치를 의심하는 쪽으로 기운다.
홍역이 그렇다.
오래된 병이다. 너무 오래돼서 오히려 만만해 보인다. 이름부터 그렇다. 전염병이라기보다 소아과 대기실 벽에 붙은 낡은 포스터 같다. 하지만 홍역은 낡았을 뿐 순하지 않다. CDC는 홍역 바이러스가 감염자가 떠난 뒤에도 공기 중에 최대 2시간 남을 수 있고, 면역이 없는 가까운 접촉자 중 최대 90%가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점잖게 문을 두드리는 병이 아니다. 빈틈을 보면 그냥 들어온다.
미국은 2000년에 홍역 퇴치 상태를 달성했다. 대단한 성취였다. 그러나 ‘퇴치’는 ‘멸종’이 아니었다. 홍역은 국경 밖에서 계속 돌고 있었고, 비행기와 사람과 불신을 타고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백신 이전 미국에서는 매년 300만~400만 명이 홍역에 걸린 것으로 추정됐고, 보고된 사례만 보아도 해마다 400~500명이 사망하고 4만 8천 명이 입원했다. 그 병을 밀어낸 것은 기적이 아니라 접종률이었다. 조용하고 지루한 숫자들이 사람을 살렸다.
백신은 이상한 상품이다. 잘 작동할수록 고마움을 잊게 된다. 병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병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사를 무서워한다. 감염병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부작용의 상상은 선명해진다. 죽음은 통계가 되고, 불안은 영상이 된다. 통계는 지루하고 영상은 설득력이 있다.
미국에서 이 아이러니는 여러 번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와 관련된 홍역 유행이 있었다. CDC 보고에 따르면 당시 백신 접종이 가능했지만 접종하지 않은 환자들 중 상당수는 개인적 신념 때문에 일부러 접종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행복해야 할 것처럼 포장된 놀이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전염병 중 하나가 퍼졌다. 미키마우스 귀 머리띠와 홍역 발진이 같은 사진첩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풍자에 가깝다.
2017년 미네소타의 홍역 유행은 더 노골적이었다. CDC는 소말리계 미국인 공동체에서 MMR 백신과 자폐를 연결하는 오해와 불안이 퍼지면서 접종률이 낮아졌고, 그 결과 홍역 전파가 가능할 만큼 취약한 공동체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당시 감염자 65명 중 20명이 입원했다. 불신은 의견으로 시작했지만, 병실 침대로 끝났다.
한국에도 비슷한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름도 묘했다. 안아키.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말만 놓고 보면 다정하다. 아이를 함부로 약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병원에서 과잉진료를 당하고 싶지 않다는 경계심. 부모라면 한 번쯤 가져볼 만한 감정이다. 문제는 그 감정이 검증되지 않은 확신과 만나면서부터다.
2017년 MBC 보도에 따르면 안아키 카페는 약 처방과 백신 접종 등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치유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취지로 운영됐고, 한때 회원 수가 5만 명을 넘었다. 보도에는 수두에 걸린 아이와 다른 아이를 접촉시키는 이른바 ‘수두 파티’, 화상에 온찜질을 하는 방식, 심한 아토피를 자연치유 과정이라며 방치했다는 사례들이 등장했다. 자연이라는 단어는 부드러웠지만, 그 부드러움이 아이의 고통을 대신 견뎌주지는 않았다.
안아키 운영 한의사는 이후 부정의약품 제조와 식품위생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확정됐다고 보도됐다. 물론 이 사례 하나로 모든 자연주의 육아를 단죄할 수는 없다. 병원도 완전하지 않고, 의학도 실수하며, 약에도 부작용은 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이유로 검증되지 않은 확신을 더 높은 진리처럼 떠받드는 순간, 불안은 치료법의 얼굴을 하고 아이 곁에 앉는다
MMR 백신과 자폐의 관련성은 오래된 유령이다. 논문은 철회됐고, 반박은 반복됐고, WHO의 백신안전 자문기구도 2025년까지의 근거를 검토한 뒤 백신과 자폐 사이의 인과관계 증거가 없다고 재확인했다. 그래도 유령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학은 설명을 요구받고, 음모론은 분위기만 만들면 된다. 과학은 “현재까지의 근거로는”이라고 말하지만, 음모론은 “그들이 숨기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지는 슬프게도 명확하다.
최근 홍역은 다시 늘고 있다. CDC에 따르면 2026년 6월 25일 기준 미국에서는 올해 확인된 홍역 환자가 2,134명 보고됐다. 2025년 한 해에는 2,288명이었고, 2024년은 285명이었다. 숫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때로 말이 없는 숫자가 가장 크게 말한다.
사람들은 건강을 원한다. 당연하다.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건강을 향한 욕망은 자주 이상한 방향으로 샌다. 몸에 나쁜 것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 순간 세상 전체를 의심하는 습관이 된다. 병원은 못 믿겠고, 제약회사는 더 못 믿겠고, 정부는 당연히 못 믿겠고, 의사는 시스템의 부품처럼 보인다. 그러다 어느 날 신뢰의 빈자리에 누군가 들어온다. 자신감 있는 말투. 단순한 원인. 분명한 적. 그리고 아주 많은 조회수.
백신은 개인의 순결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키웠다는 자부심의 반대편에 있는 오염물도 아니다. 백신은 인간이 감염병 앞에서 겨우 만들어낸 투박한 협정이다. 나는 당신의 아이를 위해 맞고, 당신은 내 아이를 위해 맞는다. 면역이 약한 사람, 너무 어려 아직 맞지 못한 아이, 항암치료 중인 사람, 운이 나쁜 사람들을 위해 사회가 서로 조금씩 방패를 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방패가 오래 작동하면 사람들은 방패가 필요 없다고 믿기 시작한다. 이것이 공중보건의 비극이다. 성공하면 흔적이 사라지고, 흔적이 사라지면 성공도 의심받는다.
옛 병은 과거에서 걸어오지 않는다. 대개는 현재의 틈에서 나온다. 검색창의 확신, 공동체의 불신, 선택권이라는 말의 과잉, 그리고 병을 직접 본 적 없는 세대의 깨끗한 무지. 홍역은 그 틈을 좋아한다.
백신을 잊은 사회는 옛 병을 다시 만난다. 그 만남은 낭만적이지 않다. 대개 열이 나고, 발진이 돋고, 누군가는 입원한다.
1.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2026, June 26). Measles cases and outbreaks.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2. Zipprich, J., Winter, K., Hacker, J., Xia, D., Watt, J., & Harriman, K. (2015). Measles outbreak — California, December 2014–February 2015. Morbidity and Mortality Weekly Report.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3. 정성기. (2017, 5월 22일). 약 안 쓰고 아이 키우면? MBC 시사매거진 2580. M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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