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보도자료를 냈다. 제목은 이렇다. “성장호르몬 주사, 키 크는 주사가 아닙니다.”
참 이상한 문장이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나 나올 수 있는 문장이다. 약은 약이고, 치료는 치료인데, 굳이 국가기관이 나서서 “그거 소원 성취 주사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나라. 그게 지금의 풍경이다.
식약처는 성장호르몬 제제가 성장호르몬 분비장애, 터너증후군 등에 따른 소아의 성장부전, 특발성 저신장증 환아의 성장장애 등 질환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라고 설명한다. 정상적으로 사용해도 주사 부위 통증, 출혈, 타박상 등이 생길 수 있고, 정상인에게 장기간 과량 투여하면 거인증, 말단비대증 같은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도 시장은 이 약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키 크는 주사.
성장 주사.
골든타임 주사.
부모의 후회 방지 주사.
이쯤 되면 약의 이름보다 별명이 더 솔직하다.
성장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치료는 중요하다. 성장호르몬 결핍이나 특정 질환으로 성장에 문제가 생긴 경우, 치료는 몸이 보내는 신호에 응답하는 일이다. 이 글이 겨누는 것은 그 치료가 아니다. 치료의 언어를 빌려 정상 범주의 아이들을 시장으로 끌고 들어가는 행태다. 병이 아닌 차이를 결함으로 번역하고, 기다림을 무책임으로 몰아붙이고, 부모의 불안을 아이의 피하조직에 주입하는 장사다.
문제는 아이가 자기 몸을 처음 배우는 방식이다.
성장호르몬 치료의 비용을 말할 때 사람들은 대개 돈을 떠올린다. 한 달에 얼마. 몇 년이면 얼마. 병원비, 검사비, 주사제 비용. 물론 그것도 비용이다. 하지만 더 오래 남는 비용은 따로 있다. 심리적 비용이다.
주사는 부모가 대신 맞아줄 수 없다. 아이가 맞는다. 병원 예약도 아이의 달력에 박힌다. 손목 엑스레이도 아이가 찍는다. “얼마나 컸나 보자”는 말도 아이가 듣는다. “조금만 더 크면 좋겠다”는 말도 아이가 삼킨다. 어른들은 그것을 관리라고 부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매번 같은 판정이다.
너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치료가 정말 필요한 아이에게 이 과정은 감수할 이유가 있다. 병적인 성장 문제를 다루기 위해 불편함을 견디는 일과, 정상 범주의 몸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들겠다며 불편함을 떠넘기는 일은 다르다. 전자는 치료에 가깝고, 후자는 야망의 외주화에 가깝다.
키가 작으면 아이가 상처받을 수 있다. 놀림을 받을 수도 있고, 또래 관계에서 위축될 수도 있다. 이것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부모는 말한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키가 커지면 마음도 자동으로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특발성 저신장 아이들을 다룬 심리사회적 연구들은 성장호르몬 치료가 평균적으로 심리사회적 기능을 뚜렷하게 개선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정리한다. 키를 몇 센티미터 올리는 일과 아이가 자기 몸을 덜 미워하게 되는 일은 같은 치료가 아니다.
오히려 치료 과정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매일 혹은 정기적으로 맞는 주사. 반복되는 검사. 성장곡선 위에 놓이는 몸. 예상 키라는 이름의 미래 판정. 그 모든 절차는 아이에게 조용히 말한다. 네 몸은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라 평가받아야 한다고. 네 몸은 기다려볼 몸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몸이라고.
아이에게 키는 숫자일 수 있다.
부모에게 키는 불안일 수 있다.
시장에게 키는 매출이다.
이 셋이 진료실에서 만나면, 가장 약한 쪽이 비용을 낸다. 대개 아이가 낸다.
해외 기준을 보면 한국의 풍경은 더 이상해진다. 영국 NICE는 성장호르몬을 성장호르몬 결핍, 터너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만성신부전, 따라잡기 성장에 실패한 부당경량아, SHOX 결핍처럼 성장부전과 관련된 조건에 권고한다. 또 소아 성장호르몬 장애를 다루는 전문의가 치료를 시작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밝힌다. 미국 소아내분비학회 지침도 성장호르몬 결핍, 특발성 저신장, 일차성 IGF-I 결핍 등을 다루되, 최신 근거와 개인별 위험·이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정리한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들이 대체로 묻는 질문은 이렇다.
병적 성장 문제인가.
정말 필요한가.
아이에게 돌아갈 부담은 무엇인가.
치료 반응은 평가되고 있는가.
한국식 질문은 조금 다르다.
지금 시작하면 몇 센티 더 클까요.
늦은 건 아니죠.
안 하면 후회하겠죠.
옆집 애도 맞는다던데요.
의학은 여기서 학원 상담의 문법으로 미끄러진다. 성장판 검사는 레벨 테스트가 되고, 예상 키는 배치고사 점수가 되고, 성장호르몬은 특강이 된다. 아이의 몸은 더 이상 몸이 아니다. 관리 대상이다. 더 잔인하게 말하면, 부모가 사회에 제출하는 포트폴리오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2025년 성장호르몬 주사제 사용 실태를 발표했다. 최근 5년 안에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사용한 아동 보호자 1,000명을 조사했더니, 약 60%가 건강 문제가 없는 일반 소아청소년에게 단순 키 성장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응답 아동 6명 중 1명은 또래 평균보다 키가 큰 경우였다.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 해당하는 소아 저신장은 절반 미만인 41%에 그쳤다.
이 숫자는 친절하게 말하면 과잉이다.
덜 친절하게 말하면 기괴하다.
키가 평균보다 큰 아이까지 성장호르몬을 맞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저신장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평균을 처벌하고 있다. 정상 범위에 있는 몸을 안심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고 있다. 크면 큰 대로 “더 클 수 있다”고 하고, 작으면 작은 대로 “지금 안 하면 늦는다”고 한다. 이 산업은 어떤 결과에서도 굶지 않는다. 아이가 작아도 먹고, 평균이어도 먹고, 평균보다 커도 먹는다.
더 황당한 것은 근거마저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NECA는 국내외 문헌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질환이 없는 정상 신장 아동을 대상으로 성장호르몬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다룬 연구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상 아이에게 효과와 안전성 근거가 부족하다.
그런데 쓴다.
그것도 평균보다 큰 아이에게까지 쓴다.
이걸 의료라고 부르기엔 의료가 너무 억울하다. 이것은 불안 산업이다. 흰 가운을 입은 불안 산업. 엑스레이와 성장곡선과 예상 키를 들고 와서, 부모에게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죄책감을 판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부모는 무너진다. 아이는 눕는다. 주사는 들어간다.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키가 작아서 놀림받을까 봐. 나중에 손해 볼까 봐. 아이가 원망할까 봐. 세상이 키와 외모에 잔인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잔인함을 줄이는 대신 아이의 몸을 먼저 고치려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폭력을 아주 성실하게 대행한다.
키 큰 사람에게 유리한 사회가 문제인데, 해결책은 아이를 조금 더 키 큰 쪽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현실적이다. 그리고 비참하다.
성장호르몬 치료의 심리적 비용은 여기에 있다. 아이는 키가 몇 센티 자라는 동안, 자기 몸을 의심하는 법도 같이 배운다. 부모의 사랑이 때로는 “너는 지금 충분하지 않다”는 문장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병원이 내 몸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내 몸이 모자란지 확인받는 곳일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몇 센티미터의 이득은 줄자로 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자기 의심의 값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팔린다.
가장 비싼 비용은 대개 영수증에 찍히지 않으니까.
1. 식품의약품안전처, 「성장호르몬 주사, 키 크는 주사가 아닙니다」, 2025년 7월 21일 보도자료.
2.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정상 키 아동의 성장호르몬 주사제 사용, 신중한 접근 필요」, 2025년 6월 4일 보도자료.
3. NICE, Human growth hormone (somatropin) for the treatment of growth failure in children, TA188; Pediatric Endocrine Society, GH Deficiency, Idiopathic Short Stature, and IGF-I Deficiency Treatment Guidelines; Visser-van Balen J. et al., “Growing up with idiopathic short stature: psychosocial development and hormone treatment; a critical review,” Archives of Disease in Childhood,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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