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는 죽지 않았다

아침방송을 틀면 낯선 이름들이 쏟아진다.

어제는 장 건강이었다. 그제는 혈관이었다. 지난주는 눈이었다. 그 전주는 관절이었다. 오늘은 또 처음 듣는 어떤 추출물이다. 이름은 길고, 발음은 어색하며, 화면에는 분자 구조 비슷한 그림이 돈다. 진행자는 처음 듣는 척 놀라고, 패널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는 말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성분입니다.”

최근은 참 바쁘다.

나는 의사인데도 모르는 물질이 많다. 이 말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의학 교과서가 세상의 모든 뿌리, 껍질, 열매, 씨앗, 발효물, 추출물을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따로 있다. 왜 하필 그 물질들이 그렇게 규칙적으로, 그렇게 절박한 표정으로, 그렇게 숨 쉴 틈 없이 등장하느냐는 것이다.

건강 정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그 성분들은 뉴스처럼 보인다. 그러나 냄새는 광고에 가깝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광고가 뉴스의 옷을 입고 나온다. 자막은 친절하고, 그래픽은 과학적이며, 전문가의 말투는 조심스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론은 늘 한 방향을 향한다.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은 쪽으로.

그리고 우연히 옆 채널을 돌리면, 놀랍지도 않게 비슷한 성분을 넣었다는 제품이 팔리고 있다. 아침에는 정보였던 것이 낮에는 구성이 된다. 오전에는 “건강 관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한정 수량”이 된다. 한쪽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지금 아니면 이 가격이 없다”고 외친다.

우연이 참 성실하다.

방송은 불안을 데우고, 홈쇼핑은 결제를 받는다. 건강 프로그램은 컨베이어 벨트의 앞 공정이다. 거기서 원료를 설명하고, 위험을 환기하고, 부족함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후 판매 방송은 이미 데워진 마음에 가격표를 붙인다. 시청자는 환자가 되기 전에 고객이 된다. 진단명도 없고 처방전도 없지만, 이미 충분히 불안해져 있다.

이 구조는 새롭지 않다.

예전 시골 장터나 경로당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웃기고, 울리고, 박수 치게 만들던 약장수들. 처음에는 공짜로 파스를 붙여주고, 음료를 나눠주고, 어르신들 사연을 들어주는 척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릎, 혈압, 당뇨, 기력, 잠, 소화, 기억력 이야기가 나왔고, 마지막에는 박스가 팔렸다.

그 약이 무엇인지보다 중요한 건 분위기였다.
외롭고 아픈 사람에게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

지금은 장소만 바뀌었다.

경로당은 스튜디오가 되었고, 약장수의 번쩍이는 양복은 하얀 가운이 되었다. 박수부대는 방청객이 되었고, 만병통치의 말은 “기능성”과 “도움”이라는 세련된 표현으로 바뀌었다. 예전 약장수는 적어도 약장수처럼 보였다. 요즘 약장수는 건강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곤란하다. 촌스러운 사기는 의심이라도 받지만, 세련된 사이는 조명과 자막과 전문가 코멘트를 달고 들어온다.

문제는 결핍이 아니다.
결핍감이다.

몸에 뭔가 부족할 것 같다는 불안. 가만히 있으면 늙고 병들 것 같다는 공포. 남들은 챙기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초조함. 이 시장은 바로 그 틈을 판다. 병을 팔지 않는다. 병의 가능성을 판다. 아직 오지 않은 질병, 아직 확인되지 않은 위험, 아직 부족한지 알 수 없는 성분을 미리 걱정하게 만든다.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이 문제입니다.”
“젊을 때부터 관리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미리 챙겨드리세요.”
“혈관은 티가 안 납니다.”
“장은 전신 건강의 시작입니다.”
“눈은 한번 나빠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틀린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교묘하다. 완전히 틀린 말은 쉽게 들킨다. 반쯤 맞는 말이 오래 산다. 불안은 언제나 과학의 어깨에 손을 얹고 들어온다. 연구 결과, 해외 논문, 임상 시험, 전문가 의견. 그 말들이 화면 아래를 지나가면 시청자는 안심한다. 내가 지금 광고를 보는 게 아니라 정보를 얻는 중이라고 믿는다. 광고가 가장 좋아하는 상태다. 광고를 광고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더 볼썽사나운 장면은 따로 있다.

그 건강 프로그램 주변을 기웃거리는 의사들이다. 특히 그 물질과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분야의 의사들이 나와서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히 조심스러운 문장을 늘어놓는다. “개인차는 있지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평소 관리가 중요합니다.” “특정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듣기에는 중립적이다. 그러나 방송의 맥락 안에서는 중립이 아니다. 하얀 가운을 입고 그 자리에 앉는 순간, 말은 제품의 그림자가 된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방송에 나가 좋은 정보를 전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중에게 필요한 의학 지식은 많다. 그러나 건강 프로그램이라는 무대가 언제나 순수한 계몽의 장이었는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출연자의 말 한마디가 다음 채널의 판매 그래프와 무관할까. 전문가의 얼굴은 왜 그렇게 자주 상품의 앞길을 닦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의사들은 정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까.

가끔 궁금하다.

그들은 출연료를 받고 나갈까. 아니면 내고 나갈까.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렇게 웃기지만은 않다. 의료가 제대로 존중받고, 진료실에서 정당한 시간을 쓸 수 있고, 의사가 환자 앞에서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라면, 하얀 가운이 저토록 자주 쇼윈도에 걸릴까.

진료실에서는 3분 만에 설명을 끝내야 하는 의사가, 방송에서는 30분 동안 콜라겐과 유산균과 이름 모를 추출물 앞에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환자에게는 “생활습관 조절하세요”라고 말하고 끝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카메라 앞에서는 건강의 깊은 비밀을 아는 사람처럼 앉아 있다.

이것은 개인 몇 명의 일탈만은 아니다. 의료가 망가진 사회에서 생기는 이상한 부산물이다.

환자는 의사를 믿지 못하고, 의사는 시스템을 믿지 못하고, 병원은 버티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더 빨리 봐야 한다. 진료실에서 설명되지 못한 불안은 방송국으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를 아침방송에서 듣고, 의사의 설명 대신 쇼호스트의 확신을 산다.

“매진 임박”이라는 자막은 어떤 진단명보다 빠르게 사람을 움직인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홈쇼핑에서는 주문 완료 문자가 바로 온다. 즉각적인 안심. 이것이 이 산업의 진짜 상품이다.

영양제 과잉 사회는 몸을 아끼는 사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몸을 믿지 못하는 사회다. 매일 아침 자기 몸을 의심하고, 매달 새로운 성분에 충성하고, 매년 더 많은 알약을 삼키며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안심한다. 건강은 조용한 상태가 아니라 관리 실적이 된다. 냉장고 위에 쌓인 병, 식탁 옆의 캡슐 통, 부모님 집으로 보내는 정기배송 박스. 그 박스들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불안을 포장한 택배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 낫지 않으냐고.

그 말이야말로 이 시장의 가장 튼튼한 기둥이다. 안 먹는 것보다 낫겠지. 해가 되지는 않겠지.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지. 그렇게 사람들은 효능이 아니라 마음의 면죄부를 산다. 먹어서 나아지는 몸보다, 먹었다는 사실로 잠시 조용해지는 죄책감.

건강 산업은 그 조용한 틈을 놓치지 않는다.

예전 약장수는 북을 쳤다.
지금 약장수는 자막을 띄운다.

예전 약장수는 만병통치를 외쳤다.
지금 약장수는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고 말한다.

예전 약장수는 장터를 돌았다.
지금 약장수는 채널을 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정보라고 부른다.

하루가 끝나면 방송은 사라지고, 주문 전화도 잦아든다. 남는 것은 식탁 위의 낯선 병들이다. 이름도 어려운 성분들이 얌전히 줄을 서 있다. 몸을 위해 샀다고 믿지만, 어쩌면 몸보다 먼저 팔린 것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약장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단지 HD 화질로 진화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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