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넘었는데 방은 아직 낮이다. 천장 조명은 꺼졌지만 휴대폰 화면이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손가락은 짧은 영상을 넘기고, 머리는 내일 아침을 걱정한다. 몸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생활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한다.
멜라토닌이나 먹을까.
이 말에는 이상한 안도감이 있다. 마치 잠이라는 게 어딘가에 고장 난 부품이고, 멜라토닌은 그 부품을 눌러 끼우는 작은 나사처럼 느껴진다. 해외직구, 건강 유튜브, 수면 루틴 영상 속에서 멜라토닌은 꽤 얌전한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호르몬이지만 무섭지 않고, 약 같지만 약 같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하니 더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멜라토닌은 원래 “기절 버튼”이 아니다. 뇌가 어둠에 반응해 만드는 호르몬이고, 수면-각성 주기와 몸의 24시간 리듬에 관여한다. 밤의 빛은 이 멜라토닌 생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멜라토닌은 망치가 아니라 신호등에 가깝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불을 켜고, 화면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머릿속에 할 일을 줄 세운 뒤에 마지막으로 알약 하나를 삼킨다. 그리고 묻는다. 왜 잠이 안 오죠. 몸은 꽤 정직하다. 낮처럼 굴어놓고 밤처럼 잠들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몸은 말이 느리고, 광고는 말이 빠르다.
물론 멜라토닌이 아무 쓸모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쓸모는 생각보다 좁다. 시차 적응이나 수면 시간이 뒤로 밀리는 지연성 수면-각성 위상 장애 같은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근거가 있다. 반대로 미국수면의학회와 미국내과학회 지침에는 만성 불면증 치료 목적으로 권고할 만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정리되어 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 시장은 이런 차이를 싫어한다. 시차, 생체리듬, 불면, 피로, 불안, 야근, 육아, 갱년기, 시험기간, 새벽 배송 노동자의 낮잠까지 한 병에 쓸어 담는 편이 훨씬 팔기 쉽다. “잠이 안 온다”는 말은 너무 넓다. 그 안에는 우울, 불안, 통증, 소음, 야간뇨, 카페인, 교대근무, 스마트폰, 관계의 문제, 돈 걱정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시장은 그 모든 것을 한 단어로 번역한다.
수면 문제.
그리고 한 번 더 번역한다.
멜라토닌.
이쯤 되면 멜라토닌은 호르몬이라기보다 현대인의 죄책감 완화제에 가깝다. 오늘도 늦게 잤지만 나는 노력했다. 영상을 두 시간 봤지만 그래도 뭔가 챙겨 먹었다. 내 몸을 망친 것은 생활이 아니라 아직 맞는 제품을 못 찾은 탓이다. 건강 산업은 이 심리를 좋아한다. 자기혐오를 불쏘시개로 쓰고, 통제감을 포장지로 두른다.
더 우스운 건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이다. 몸에서 원래 만들어지는 물질이라는 이유로 안전하다고 여긴다. 몸에서 원래 만들어진다고 해서 마음대로 넣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몸은 자연산이라는 말에 별로 감동하지 않는다.
부작용도 있다. 두통, 어지러움, 오심, 졸림이 생길 수 있고, 장기간 사용의 안전성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일부 약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알려져 있다. 특히 와파린 같은 항응고제, 항경련제, 진정 작용이 있는 약물과 연결될 때는 “잠 좀 자려고 먹는 것”이라는 말로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제품 문제도 있다. 해외에서는 멜라토닌 보충제의 실제 함량이 표기와 크게 다른 경우가 보고된 바 있다. 한 연구는 제품별 멜라토닌 함량이 라벨 표시와 상당히 달랐고, 일부 제품에서는 예상 밖의 성분도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한국 식약처도 일반식품이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보이는 혼동을 줄이기 위해, 멜라토닌·글루타치온 등이 들어가고 섭취 방법이 의약품과 유사한 정제·캡슐 형태 일반식품의 생산 제한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모든 사실에도 멜라토닌은 계속 팔릴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잠 못 드는 사람은 많고, 잠 못 드는 이유를 하나씩 들여다보는 일은 귀찮고 아프다. 멜라토닌 한 알은 그보다 훨씬 깔끔하다. 설명이 짧고, 배송이 빠르고, 책임이 작다.
그러나 잠은 그렇게 단순한 손님이 아니다. 잠은 하루 전체가 밤에게 보내는 보고서다. 낮 동안 몸을 어떻게 썼는지, 빛을 얼마나 들였는지, 불안을 어디까지 방치했는지, 피곤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무시했는지 적어 내려간 뒤 마지막 장에 도장을 찍는다.
우리는 그 마지막 장만 찢어서 고치고 싶어 한다.
멜라토닌에 대한 오해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것을 너무 강한 약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너무 순한 영양제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멜라토닌은 둘 다 아니다. 상황에 따라 쓸모가 있을 수 있는 생체리듬의 신호다. 문제는 그 신호를 잠을 강제로 끌고 오는 호출벨처럼 쓰는 데 있다.
알약은 어둠을 대신할 수 없다.
조용함을 대신할 수도 없다.
내일을 향한 공포를 대신 삼켜주지도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오늘 밤 또 검색할 것이다. 멜라토닌 효과, 멜라토닌 부작용, 멜라토닌 매일 먹어도 되나요. 그리고 화면은 친절하게 빛날 것이다. 잠을 찾는 사람의 얼굴 위에서, 잠을 쫓아내는 바로 그 밝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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