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된 환자, 판매원이 된 의사

의사라는 직업에는 이상한 모순이 하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다. 이것은 현대 의료가 어렵게 얻어낸 중요한 가치다. 과거의 의사들은 지나치게 권위적이었고,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이제는 다르다. 환자의 자율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의사는 동시에 환자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된다.

술을 끊어야 한다면 끊으라고 말해야 하고, 체중을 줄여야 한다면 줄이라고 말해야 하며, 불필요한 검사는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때로는 환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을 권해야 하고, 환자가 믿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의료윤리에서 말하는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이 단어는 대개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누군가를 대신해 결정하고 간섭하는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에서의 온정적 간섭주의는 조금 다르다. 의사는 환자의 자유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개입한다.

아이가 달리는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려고 하면 부모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잡아당긴다.

의료 역시 비슷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는 이제 의료를 서비스로 소비한다. 병원은 고객 만족도를 관리한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건강 정보가 넘쳐난다. 의사는 환자와 정보를 공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정보 공급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의사는 점점 불편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검사는 필요 없습니다."

"그 영양제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혈당 스파이크를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그네슘 부족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말은 의학적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는 불친절하게 들린다.

반대로 검사를 하나 더 해주고, 영양제를 권하고, 환자가 원하는 설명을 해주면 만족도는 올라간다.

의사는 점점 전문가라기보다 판매원이 된다.

그러나 전문직(profession)의 핵심은 고객 만족이 아니다.

전문직은 일반인이 갖기 어려운 지식과 경험을 사회로부터 위임받은 직업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이용해 상대방이 원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변호사가 무조건 고객이 원하는 소송을 권하지 않는 것처럼, 회계사가 무조건 고객이 원하는 회계 처리를 해주지 않는 것처럼, 의사 역시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검사와 치료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의료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판단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전문직의 존재 이유도 함께 흔들린다는 점이다.

환자는 소비자가 되고, 의사는 서비스 제공자가 된다.

그 순간 의료는 전문가와 환자의 협력이 아니라 거래가 된다.

거래에서는 고객이 왕이다.

하지만 의료에서는 언제나 고객이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말을 하는 데 있다.

물론 의사는 겸손해야 한다. 과거처럼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권위주의를 버리는 것과 전문성을 포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과 환자의 모든 요구를 따르는 것 역시 다르다.

어쩌면 오늘날 의료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책임인지도 모른다.

환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할 책임.

필요 없는 것을 필요 없다고 말할 책임.

그리고 그 말 때문에 욕을 먹을 각오를 할 책임.

의사의 전문성은 최신 논문을 읽는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환자의 기대를 거스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권할 수 있는 용기 역시 전문성의 일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