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점심을 먹은 20대 직장인이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본다.
120, 130, 140.
숫자는 완만하게 오르지 않는다. 화면 속 그래프는 야심 찬 테마주처럼 우상향한다. 빨간 불이 켜지고, 마음도 같이 빨개진다. 방금 먹은 것은 국밥 한 그릇이었는데, 기분은 거의 내부 장기 폭락장이다.
주식 차트 이야기가 아니다. 연속혈당측정기 앱 화면 이야기다.
한때 연속혈당측정기는 환자의 도구였다. 특히 1형 당뇨병 환자나 혈당 조절이 어려운 당뇨병 환자에게는 생활의 일부이자 안전장치였다. 너무 높아도 문제고, 너무 낮아도 위험한 숫자. 혈당은 그들에게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기 위한 정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도구가 건강한 젊은 사람들의 팔에도 붙기 시작했다. 질병 관리의 장치가 웰니스 기기가 되었고, 치료의 언어가 자기관리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혈당이 얼마나 오르는지 인증하고, 바나나를 먹고 놀라고, 냉면을 먹고 반성한다. 식후 혈당 그래프는 어느새 몸 안에서 벌어지는 실시간 중계가 되었다.
혈당 스파이크라는 말도 그렇게 대중적인 공포가 됐다.
물론 식사 후 혈당은 오른다.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생리다. 건강한 몸은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오르고,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려온다. 대개는 조용히, 성실하게, 아무 드라마 없이 일어난다. 몸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화면은 조용한 생리를 사건으로 만든다.
그래프는 오르내림을 과장한다. 빨간색은 위험해 보이고, 알림은 경고처럼 들린다. 20대의 건강한 췌장은 별말 없이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배신당한 표정을 짓는다. 밥 한 공기를 먹었더니 혈당이 올랐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몸은 밥을 먹은 줄 안다. 그래프도 그걸 안다. 이상하게 사람만 모른다.
문제는 혈당이 아니다.
문제는 혈당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물론 이 유행에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보면 행동은 바뀐다. 탄산음료를 마신 뒤 그래프가 솟는 것을 본 사람은 다음번에 덜 마실 수도 있다. 정제 탄수화물에 예민한 반응을 확인하고 식습관을 고칠 수도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혈당 반응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흥미롭고, 때로는 유용하다. 숨어 있던 대사 이상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용한 도구가 모든 사람에게 매일 필요한 것은 아니다.
체중계가 유용하다고 해서 하루 열두 번 올라갈 필요는 없다. 혈압계가 중요하다고 해서 회의 전후마다 팔을 조일 필요는 없다. 혈당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생명줄이지만,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안을 정밀하게 생산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연속혈당측정기는 혈액 속 혈당을 직접 재는 것이 아니라 조직액의 변화를 추정한다. 지연도 있고, 오차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의 작은 변동을 질병의 전조처럼 해석하기 시작하면 숫자는 정보를 넘어 공포가 된다. 몸에 좋은 과일을 먹고도 그래프가 올랐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건강관리라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식사 검열에 가깝다.
요즘의 건강 산업은 병든 사람만 상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넓은 시장은 건강한 사람에게 있다. 건강하지만 불안한 사람. 정상 수치를 가지고도 안심하지 못하는 사람. 증상은 없지만 데이터가 부족해 불편한 사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더 민감한 센서다. 더 촘촘한 알림이다. 더 세밀한 그래프다. 수면 점수, 스트레스 점수, 심박 변이도, 생물학적 나이, 혈당 곡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숫자로 몸을 설명하고, 점점 더 적게 몸을 믿는다.
췌장은 묵묵히 일하는 장기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장기를 마치 무능한 직원처럼 감시한다. 점심 먹고 왜 이렇게 올랐느냐고 묻고, 간식 먹고 왜 빨리 안 내려오느냐고 닦달한다. 몸은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데, 주인은 성과 평가표를 들고 있다.
이쯤 되면 건강관리는 자기 돌봄이 아니라 내부 감사에 가까워진다.
혈당 스파이크 포비아는 혈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숫자로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병에 걸리기 싫어서라기보다, 병에 걸릴 가능성조차 견디기 어려운 시대의 표정이다.
그래프를 보는 일은 나쁘지 않다. 때로는 식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문제는 그래프가 식탁보다 커질 때다. 밥맛보다 곡선이 중요해지고, 포만감보다 수치가 중요해지고, 몸의 감각보다 앱의 알림이 더 신뢰받을 때다.
건강한 20대의 췌장은 대체로 실시간 중계 없이도 제 일을 한다. 모든 장기가 생방송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주식 차트는 자주 들여다봐도 어차피 마음이 상한다. 혈당 차트까지 그렇게 만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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